눈보라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높았다. - P9
- 청천강을 물었다. 청천강을 내주었는가? - 아마도 그러할 것이옵니다. 서북의 군사를 안주로 모아깊은 산성에 의지해 있는데, 적병들은 산성을 멀리 비켜서 대로를 따라 남하하고 있다 하옵니다. - 안주는 금성철벽金城鐵壁에다가 서북의 중진重陣이라더니....... 안주는 북쪽으로 청천강의 사나운 물줄기를 두르고 동쪽으로는 험준한 산세가 잇닿은 천험이었다. 서북의 군병들은 안주를 본진으로 삼아 도로와 음성을 비워 놓고 깊은 산성에 둔屯을 치고 기다렸다. 영의정 김류가 진지전의 전략을 냈고, 도원수 김자점이 군사를 배치했다. 그러나 적들이 안주성을멀리 돌아 빠른 기병을 앞세워 들길을 따라 달려온다면, 산성에 들어앉은 군사들은 화살 한 번 쏘지 못하고 이미 휩쓸고지나간 적들이 일으킨 먼지를 바라보고 있을 터였다. 안주에서 평양까지는 보병 걸음으로 이틀 거리였고, 평양에서 개성까지는 큰길 가까이 배치한 군사가 없었다. 청천강을 내주고서 대동강을 지킬 도리는 없었다. 임금이 물었다. 길을 묻는 과객의 어조였다. - 청천강 다음이 대동강이지? 김류가 대답했다. - 전하, 적이 다시 대동강을 건넌다면 도원수와 평양과 황해의 감사, 병마사 들의 목을 베고 그 처자식들도 군율로 연좌함이 옳을 줄 아옵니다. 천장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임금은 말했다. -그렇겠구나. - ••••••. - 그렇겠어. 그러하되 적병이 이미 도성을 에워싸서 왕명이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서북 산성에 군율이 닿겠느냐. - P12
김상헌의 형 김상용은 일흔다섯 살이었다. 우의정 벼슬을내놓고 초야로 돌아갈 때 임금은 붙잡지 못했다. 적이 다가오고 대궐이 술렁거리자 김상용은 보료에서 일어섰다. 김상용은 소임이 없는 신민으로서 어가를 따라나섰다. 강화도로 가는 눈길 위에서 쓴 편지를 노복을 부려서 동생에게 전했다. 급히 휘갈겨 쓴 편지였다. ••• 그리 되었으니 그리 알라. 그리 알면 스스로 몸 둘 곳 또한 알 것이다…… 양천, 행주, 김포의 눈 쌓인 벌판 위로 바싹 쫓기는 가마의 대열이 흘러가고, 그 뒤를 지팡이를 짚고 따라가는 늙은 형의뒷모습이 김상헌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 너는 어찌하려느냐? 나를 따르겠느냐? - 소인은 큰댁 대감께 매인 몸인지라••••••. 노복은 돌아갔다. 김상헌은 돌아가는 노복에게 곶감 한 접을 내주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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