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는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죽고 싶지 않았다면 왜 자기 자신을 쏘았을까? 앨버말에서 벌어진 상황은 악몽 같은 것이었으나 나는 상황을 어느 정도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같다. 헨리가 자신을 쏜 것은 절망 때문이 아니었다. 공포 때문도 아니었다. 줄리언과의 이별이 헨리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건은 헨리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우리와 자기 자신에게 줄리언이 가르쳤던 의리, 경건, 성실, 희생 같은극도로 차가운 원칙은 따를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하는 어떤 고상한 제스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앨버만의 벽거울에 비치던 헨리가 권총을 자기 관자놀이에 갖다 대던 모습을 잘 기억한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볼 때 그의 정신은 승리의 순간을 향한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얼굴은 흡사 도약대 끝으로 다가가는 하이 다이버의 얼굴과 같았다. 눈을 꼭 감은채 도약대 끝으로 다가가면서 물을 가르고 뛰어들게 될 순간을 기다리는환희의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나타나던 표정을 이따금씩 생각한다. 그리고 그 표정의 언저리에서 벌어지던 수많은 일도 이따금씩 생각한다. 나는 처음으로 햄든의 자작나무 숲을 보았을 때의 일, 처음으로 줄리언을 만났을 때의 일, 햄든에서 처음으로 배웠던 그리스어 문장, ‘아름다움은 공포다(Kalepa taCala)‘도 이따금씩 생각한다. - P413
하기아 소피아...... 베니스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찰칵찰칵
"여기가 어디야?"
"비밀이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문객은 나뿐인 것 같았다.
"구경꾼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 아니야?"
"아니라고 해야겠지."
나는 헨리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물을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없었다.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질없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행복하니?"
마침내 내가 물었다.
헨리는 잠깐 생각해보고는 대답했다.
"별로, 너도 네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겠지?"
찰칵찰칵...... 모스크바에 있는 성 바실리우스 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솔즈베리와 아미앵...... 헨리는 시계를 보았다.
"미안해, 약속에 늦을 것 같아서."
그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득히 뻗어 있는 희미한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P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