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비클린은 언론과 학계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FC에 힘입어 자폐증이 "재정의될 수밖에 없다는 초기 주장은 오래도록 자폐증을 면밀히 연구해온 사람들에 의해 부정당했다. FC가 허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는 비클런의 태도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비클런은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994년 많은 동료심사저널에 FC가 허구임을 입증한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자, 잘 수행된 FC와 그렇지 않은 FC는 나르나는 과거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와그 연구들의 방법론을 공격했다. 또한 자신이 FC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주장했는지 분명히 하려고 했다. 연합통신 Associated Press 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똑똑하다거나 FC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명석하다고 떠든게 아닙니다. 제 주장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말할 것이 없다는것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 P510
잠깐 정신나간 듯 방황의 시기를 보낸 보인턴은 FC에 관한 문헌들을 보다 깊게 읽었다. 그리고 촉진자가 얼마나 쉽게, 그렇게 하고있음을 깨닫지도 못한 채 스스로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깨달았다. 불가능하게 들리지만 그 사실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논문들을 읽으면서 보인턴은 위튼 가족에게 큰해를 끼쳤다는 죄책감과 함께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베시가 목소리를 갖기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그녀는 단어들이 메시의것이기를 절박하게 염원했던 것이다. 나머지 부분, 즉 베시의 가정생활에 대한 추잡한 환상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993년학기가 끝날 때쯤 보인턴은 상사들에게 FC에 관한 마음이 바뀌었음을 알리고, 교육청에 FC를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교육청은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 P511
그날 밤 보인턴은 <20/20>에서 미시간주 웨스트 블룸필드westBloornfield에 사는 웬드로우wentrow 가족의 이야기를 지켜보았다. 자신이 FC로 인해 참담한 일을 겪은 지 15년 후, 그들 가족 역시 자폐증으로 말을 못하는 열네 살 난 딸 에이슬린Aislinn에게 촉진자를 고용할 예산을 마련해달라고 지방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합의가 폭넓게 이루어졌음에도 더그 비클런은 여전히 시러큐스 대학에서 FC를 가르쳤고, 드러나지 않지만 FC를 열렬히 지지하는 소수의 가족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FC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며, 실제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음을 무시한 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정식으로 인정받는 치료법의 주변부에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는 촉진자와 가족들은 이 방법에 전폭적으로 신뢰를 보내며 스스로를 강화하는 하위문화를 형성했다. - P513
하지만 희망어린 환상은 심지어 FC를 지지하다가 큰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조차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줄리언 웬드로우는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부당한 비난을 받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수감되었음에도 FC에 대한 신념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나중에 마지못해 신념을 버리기는 했지만 FC가 사실이며 딸이 정말로 자기와 대화를 나눈다고 믿었을 때 경험한 기쁨을 생각하면 자신이 치른 희생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실제로 딸이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아이를 얼마나 다르게 대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표현해야 할 모든 말을 듣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내면 어디엔가 정상적인 아이가 있다는 꿈은 그렇게 강력했다. - P515
편의상 두 진영을 "병합파"와 "세분파"라고 하자. 로나 윙과 한스 아스퍼거가 아스퍼거 증례들과 레오 카너의 증례들을 구분하기보다 비슷하다고 봐야 할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을 때도 양진영 사이의 긴장이 나타났다. 아스퍼거는 자신의 증례와 카너의 증례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중후군을 보았다고 믿었다. 이 점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하다. 양쪽 어린이를 중요한 차이점에 따라 별개의 집단으로 나눠야 한다고 고집한것으로 보아 그는 전형적인 세분파다. 반면 윙은 진정한 병합파로가벼운 자폐적 행동을 보이거나, 여러 가지 자폐적 행동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동일한 집단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자폐적 행동의 핵심 기제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작동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녀는 "스펙트럼" 모델을 개발했다. 현재는 철저한 병합적 해석이 폭넓게 인정되며, 심지어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본다면 그런 생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때를 풍미했던 다른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스펙트럼이란 생각도 많은 단점이 있다. 향후 과학적 연구를 통해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자폐적 행동들이 알고 보니 환경이나 유전이나 기타 다양한원인들로 인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생각의 추는 언제라도다시 세분파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암 연구를 비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암"이란 말은 오래도록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종양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다양한 암들이 사실은 완전히 다른 병이며, 각기 고유한 특성과 고유한 생물학적 과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결국 모두가 세분파의 길로 갈수밖에 없었다. 자폐증 역시 근본적으로 다른 다양한 병들일지 모른다. 알고보니 각기 고유한 유전적 "지문"을 지닌 채 서로 거의 관련이 없는 다양한 자폐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의 차이를 무시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이란 개념은 설명 능력을 상실한 채 더 이상 자폐증에 관한 대화에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 P522
위장관 문제, 수면 문제, 경련, 식품 과민성 등 신체적 증상과 자폐증이 뒤섞인 도브 같은 아이에게교육 기반 치료법은 시간낭비일 뿐이란 확신을 더욱 강화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존과 포샤는 도브가 신체적인 기능이상을 겪고 있으며, 그것이 아이의 뇌도 침범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도브의 자폐증에 관해 상의할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다. 행동분석가들은 그런 측면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나 소아과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자폐증의 근본원인이 기질적, 즉 신체에 생긴 생물학적 문제라는 사실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했지만, 신체에 초점을 맞춰 치료를 제공하는사람은 없었다. 의과대학에서도 그런 치료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치료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돌팔이나 사기꾼 빼고는 그런 치료를 한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 P531
런던 부부의 이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연구자들이 자폐증에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뿌려진 ‘종잣돈"이 결실을 맺고, 거기 주목한 다른 지원기관이 뛰어든 것이었다. 선순환이 시작된 것 같았다. - P549
존과 포샤는 마침내자폐증 유전연구교환소 Autism Genetic Research Exchange AGRE 라는 명칭으로 본격적인 DNA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폐증의 유전암호를 풀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력에 감탄한 수많은 가족이 삽시간에 등록을 마쳤다. 새롭게 교육받은 ADI평가자가 각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여 몇 시간씩 가족을 면담했다. 면담 결과는 방문 과정을 통째로 기록한 오디오 및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보내 분석했다. 자폐증이 확진되면 에드베리가 나타났다. 장시간의 기차여행과 운전에도 그는 언제나 그랬듯 특유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온 가족의 혈액을 채취했다. 손상되지 않게 포장하여 영구 보존 장소인 동부 러트거스 대학세포 보관소(Cell Repository) 에 도착한 모든 혈액 검체는 게놈 선별검사와 함께 "불멸화" 과정을 거쳤다. "불멸화"란 혈액을 구성하는 세포를 복제한 후 증식시켜 원래 세포와 정확히 동일한 복제세포를 무한정 공급하는 과정이다. 서둘러 진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최초로 지원한 150 가족의유전자를 채취하여 보관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이미 다른 250 가족이 대기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결국 연간 100만 달러를 넘었다. 하지만 국립보건원에서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여 힘을 실어주었다. 더 많은 외부 연구자금을 자폐증 연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변함없는 목표였다. 그 정도의 재정지원을 얻어냈다는 것은 품질관리라는 어려운 관문을 돌파했다는 뜻이었다. 과학계 역시 확신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 P553
대부분의 경우 자폐 어린이는 익사나 심한 경력에 의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았다. NAAR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세심하게 위로하면서도 향후 세대 어린이들을 위해 늦지 않게 장기기증을 제안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하나의 프로토콜로 만들었다. 조직은행에 대한소문이 자폐공동체에 널리 퍼지자 기증 신청자가 크게 증가했다. 하버드 뇌조직자원센터 Harvard Brain Tissue Resource Center 내에 위치한 자폐증 뇌조직은행은 이내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어 이전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연구들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 P555
루스 설리번이 옳았다. <레인맨>은 자폐증의 서사를 영원히 바꾸었다. 자폐인의 진정한 어려움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를 본절대 다수에게 그것은 여전히 타인의 급박함일 뿐이었다. 하지만 1988년 이후 대중은 자폐증이 어떤 상태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했고, 동시에 전반적으로 자폐인의 모습에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분명 진보였다. 자폐증이란 세계에서 최초로 배출한 스타인 레이먼드 배빗 Raymond Babbitt 이 가공의 인물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다 먼곳까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살아숨쉬는 자페인 중에서 스타가 탄생해야 했다. - P578
그랜딘은 청중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부모들은 그녀의 경험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침내 자신들을 오랫동안 절망에 빠뜨렸던 언어를 유창하게 통역해줄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았다. 질문이 쏟아졌다. 왜 우리 아들은 하루 종일 뭔가를 돌리고 있을까요? 왜 조금만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걸까요? 왜 저와 눈을 맞추지 않을까요? 그랜딘이라고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없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자폐증을 겪는 사람이 삶을 어떻게느끼는지 설명할 수는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소리에 민감하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철로에 몸이 묶인 채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촉각도 극도로 예민해 어떤 옷감이 피부에 닿으면 너무 까끌거려 실제로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강렬하다고 할 정도로 친밀한 대화였다.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도있었다. 그날은 그랜딘에게도 삶의 전환점이었다. 이제 그녀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폐인이었다. 곧 미국 전역의 자폐 단체에서 강연 예약이 줄을 이었다. 1988년에는 미국자폐협회(전미 자폐어린이협회에서 이름을 바꾸었다) 이사진으로 초청받았다. 자폐 당사자로는 최초였다. 설리번은 매년 공적 생활이 더해질수록 그랜딘이 대중강연을 눈에 띌 정도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적재적소에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1990년대에 영국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는 뇌의 신경연결이 비전형적인 사람들의 다양한 양상을 그린 저서에 그랜딘을 등장시켰다. 그는 그녀가 때때로 "화성의 인류학자처럼 느껴진다고한 말에 매혹되었다.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녀에 관해쓴 《뉴요커 > 기고문과 나중에 발표된 저서의 제목으로 쓸 정도였다. 1995년 그랜딘은 두 번째 책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를 출간했다. 당사자의 시각으로 기술된 이 책은 어머니의 헌신에 힘입어 과학자이자 강연가이자 작가이자 자폐공동체의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인물로 성장한 소녀의 수기다. - P582
이런 불길한 숫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국적 유행이란 주장에 좀 이상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별로 변화폭이 너무 많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인접한 주끼리도 자폐증 유병률이 전혀 달랐다. 2002년 연방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앨러배마주의 유병률은 대략 어린이 1만 명당 3명이었던 데 반해, 조지아주는그 두 배가 넘었다. 두 주는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공간이라 할 수없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다. 그 강마저 주 경제 전체에 걸쳐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미네소타주와 아이오와주는 지도상에 그어진 선 하나로 구분될 뿐이지만, 2012년 미네소타주에서 보고한 유병률은 이웃한 주의 열 배가 넘었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잘 알았다. 공중보건당국이 아니라 교육당국에서 자폐증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장애인교육법에는 자폐인에 대한 표준적 정의를 명시했지만,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을 자격을 판정하는 기준은 각 주 교육부의 재량으로 남겨두었다. 이에 따라 각 주마다 독자적인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는데, 포함된 항목은 적게는 다섯 개부터 많게는 열일곱 개로 천차만별이었다. DSM의 특정 버전에 실린 진단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주가 있는가 하면, IDEA 정의를 이용하는 주도 있었고, 몇몇 주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적용했다. 정신과전문의나 공인된 임상심리학자의 진단을 요구하는 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주도 많았다. 임상적 진단과 보건서비스 필요 판정은 전혀 동일한 의미가 아니었고, 때때로 부모와 교장, 특수교육 교사들이 협의해서 서비스 제공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다루는 데이터 자체가 일관성이 없는 것은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숫자들은 "진정한 유병률을 드러낸다기보다 사회과학자들의 용어로 소위 "행정적" 유병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보건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의 숫자를 헤아려 자폐인의 숫자를 산정한다는것은, 비유컨대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기내식을 주문한 사람의 숫자를 보고 승객 중 채식주의자가 몇 명인지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했을 때 진정한 "유병률"을 왜곡시킬 수많은 요인이 존재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자폐증의 행정적 유병률은 너무나 다양한 인자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순한 집계상 오류나 계산 오류부터행동을 관찰하여 진단을 내리는 방식 고유의 주관성에 이르기까지그야말로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다.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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