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가 지적했듯 잘 발달한 언어능력은 모든 소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또 다른 특징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들은 지능이 뛰어났다. 많은 경우 그저 뛰어난 정도가 아니었다. 프리츠는 불과 여덟 살 때 복잡한 시스템에 관련된 문제들을 풀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묘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 힘을 들이지도 않았다. 아스퍼거는 이런 지적 재능이 요행이 아니라 독특한 인격의 긍정적인 부작용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했다. 매우 좁은 한 가지 주제에 깊이빠져드는 능력은 어쩌면 한눈팔지 않고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모래 위에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리는 데 완전히 사로잡혀 있던 어린 소년이 결국 천문학 박사가 되고 뉴턴의 수학적 오류를 입증한 일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그토록 힘들었음에도 대부분의 소년이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스퍼거는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학자나 음악가나, 문장학 전문가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개척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이한 행동은 어른이 되어서도지속되었지만 "그들은,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도 맡은 역할을 잘 수행했다." - P450
독일에서 생산된 퍼실은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제다. 하지만 2차대전 직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그 단어는 일종의 음산한 유머로서 당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쁜 평판을지우기 위해 기울인 맹렬한, 때로는 터무니없는 노력을 가리키는말이었다. 연합군 측의 "비나치화" 정책에 힘입어 영향력있는 위치에서 나치당원과 부역자를 몰아내려는 노력이 전개되자 사람들은 허둥지둥 결백을 입증해줄 증인을 찾아다녔다.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사로잡힌 시대에 친절하거나 인간적으로 품위있는 행동을 했던 순간을 유대인이 나서 증언해준다면 특히 가치가 있었다. 오명을 씻으려는 사람은 종종 게슈타포에게 체포 협박을 당했다거나, 나치정책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희생자로 묘사했다. 나치에 보조를 맞춘 것은 책략일 뿐, 사실은 몰래 저항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노력이 성공을 거두면 결백함 또는 "깨끗함"을 인증하는 서류를 발급받았다. 그 서류를 페르질샤인persilschein, 즉 "퍼실 증명서Persil certificate"라고 불렀다. 그러나 심지어 그때도 페르질샤인에 대한 냉소가 팽배했다. - P466
그렇다 해도 특수교육과 그것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아스퍼거의 비전은 그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통념과 달리 나치 통치하의 독일에서도 특수교육은 나름대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제3제국은 생산적인 시민이 될 수 있는 장애 어린이에게는 지원과 교육을 허용했다. 심지어 히틀러 유겐트 내에도 맹인과 청각장애인들로 구성된 특수분과가있었다. 그러나 나치는 지원 비용이 결국 국가에 물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그런 어린이는 나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무가치했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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