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론그전부터 쇼플러는 센터에 있는 어린이들이 인형을 입으로 빨고, 연필의 냄새를 맡는 등 입과 코를 이용하여 세상을 탐색하는 행동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어린이들이 "가까운" 감각을 이용하여 정보를 받아들이며, 이들에게는 이런 감각이 시각이나 청각 등 "먼"감각 보다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베텔하임에게 장애학교 어린이들을 통해 가설을 검증해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베텔하임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왜 당신네 과학자들은 우리 임상가들이 다 아는 얘기를 항상 입증해야 한다고 법석을 피우는 거요?" 베텔하임은 쇼플러의 연구가 자폐증의 신경학적 기초에 대한 가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신분석이란 편향에 사로잡힌 그가 보기에는 어처구니없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멍청한 짓에 내 아이들을 빌려줄 수는 없소!" 쇼플러는 다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마쳤다. 자폐 어린이들은 분명 "가까운 감각을 통한 정보 수집을 선호했다. 그 자체로흥미있는 통찰이자, 자폐증에 신경학적 독특함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1964년 박사논문으로 발표한 이 연구는 나중에 쇼플러가 자폐증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란 평판을 얻은 것과 거의 관련이 없다. 그의 업적은 신경학이 아니라교육에 있었다. 최초로 자폐 어린이를 위한 학교들의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학교에서 부모들은 언제나 환영받았다. - P326
프로그램에 쓸 수 있는 자원은 보잘것없었지만, 쇼플러는 일찍방향을 정하고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부모들을 치료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원칙은 나중에 이바 로바스가 부모들을 교육시켜 ABA를 강화시킴으로써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부모들에 대한 쇼플러의 헌신은 훨씬 깊은 것이었다. 쇼플러는 부모들을 단순히 값싸고 교육 가능한 보조인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 치료사라고 불렀고, 부모들이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만큼 전문가도 부모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자폐증 학회에서 그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전문가였으며, 하루 종일 발표와 경험담이 이어진 뒤에도 늦게까지 남아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를 참여시킨다는 생각은 그 뒤로도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1971년 《현대심리치료저널Journal of Contemporary Psychotherapy)에 발표한 "희생양이 된 정신이상 어린이의 부모들"이란 논문에서 그는 동료 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에서는 부모들이 "공동치료사로서 자녀의 사회화 과정에 성공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자폐증과 어린이 조현병 저널Journal of Autism and ChildhoodSchizophrenia》 창간호에 라이클러는 이렇게 썼다. "이제 자폐 어린이의 부모를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 - P333
ABA 소송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캐서린 모리스의 책이 출간된 후 몇 년간, 자폐 부모들이 "전문가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그전에는 대부분의 부모가 의사, 학교 교장, 정신과 의사, 기타 전문가에게 존경을 표했다. 힘있는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져 자식에게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까 우려해서였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적극적인 것도 중요했지만, 너무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이런 태달도는 1990년대 들어 부모들이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면서 크게라졌다. 바로 법이었다. 15년 전 발효된 장애아동교육법은 공립학교가 교육받기 원하는 모든 장애 어린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1990년에 통과된 장애인교육법은 이를 개정한것으로 사상 최초로 자폐증을 장애의 한 범주로 명시했다. 근본적인변화였다. 이제 모든 학교는 자폐 어린이의 필요에 따라 맞춤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학교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부모는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었다. 교육 관련 소송은 언제나 있었다. 부모들은 훈육방식을 바꾸기위해, 또는 여학생 야구부를 만들기 위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래도 자폐 어린이의 교육이 문제가 된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각급 학교는 법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끝없이밀려드는 "로바스 소송"으로 몸살을 앓았다. 법률 및 의학 분야 기자들은 ABA 치료비 지원 문제를 "법적으로 가장 관심이 뜨거운 주제"이자, "부모와 학교 양쪽에서 가장 큰 관심사"라고 썼다. 자폐를둘러싼 특수교육 소송의 비중은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 중 자폐인이 차지하는 비율의 열 배에 이르렀다. 자폐 부모가 자녀에게 더 많은 ABA를 시행하기 위해 법에 호소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는 뜻이었다. 이런 다툼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법정싸움은 학교와 부모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켰으며, 양쪽 모두 승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과정에서 교육예산이 소송비용으로 줄줄 새는 모습은 모든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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