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 좋아하는 인용구 중에는 카뮈의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고통당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당하는 아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돕지 않으면 도와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있겠는가? (케네디는 연설에서 이 말을 인용할 때는 대개 "고통torture" 을 고난suffer-ing"으로 바꿔 말했다.)케네디는 이 말을 1967년에 낸 저서 「더 새로운 세상을 찾아 To Seek a Newer World」의 경구로 사용했고, 그것은 케네디의 믿음을 지탱하는 두기둥을 표현해주었다. 하나는 고통을 경감시킬 의무가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완벽히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 P258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중에 로버트 케네디는 쿠바에 구축된 소련 미사일 기지를 기습 공격하는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는것처럼 비도덕적 행위라고 주장했었다. 자신이 쓴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인 [13일]에서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전면전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반대 의견, 그리고 아무도 (케네디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주장은 미국이 기습공격을 한다면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지고 있는 도덕적 지위가 훼손되거나 일시에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 P273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케네디를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대표인 제리 에이브럼슨도 그런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에이브럼슨은 블루밍턴 캠퍼스에서 케네디를 소개했고, 나중에 자신은 징집 명령에 응하지 않고 캐나다로 도피하거나 감옥에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에이브럼슨은 케네디와 함께 인디애나대학교의 다른 캠퍼스를 함께 방문하면서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케네다는 감옥에 가기보다는 군대에 갈 것을 권했다.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 같은 유명인이 군 복무를 거부하고 감옥에 가면 그런 결정이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저항이 모종의 성과가 있겠지만, 에이브럼슨의 병역 거부는 지역 신문에도 언급되지 않을 것이고, 병역 거부로 인해 에이브럼슨의 저항운동은 영향력을 갖기 더 힘들어질 것이었다. 케네디는 일단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면 사회를 변화시킬 도덕적의무를 갖게 되고, 베트남이나 빈곤 같은 이슈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있다고 했다. 결국 에이브럼슨은 징집되어 군에서 복무했고, 제대한 뒤 로스쿨에 다녔고, 자기 아들의 가운데 이름을 "로버트"라고 지었을 뿐아니라, 공직에 진출해서 훗날 켄터키주 루이빌의 시장이 되었다. 에이브럼슨은 케네디가 자신에게 시스템 내에서 활동하고, 정정당당하게행동하며,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를 때까지 기다린 후에 그런 영향력을 사회변화에 사용하라는 말을 했을 때 케네디가 출마를 결정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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