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웃고 있지만 우리 삶은 우연에 내던져지고, 속수무책으로 내맡겨지고, 피할 길이 없어. 그 우연한 일에 말이야 알겠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그것이 네게 닥쳐서 너를 짓누를 수도, 일으켜 세울 수도 있어. 우연한 사건이란 우연히 일어나거든, 우리는 그런 우연에 내맡겨지고, 그 앞에 먹잇감으로 내던져진 거야.
그런데도 우리는 웃고 있어. 그 곁에 서서 웃고 있다고.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삶과 사랑이 빛어낸 고뇌 - 이것들은 파도와 바람처럼 불확실하고 우연한것이야. 제멋대로 알겠니? 알겠냐고!"
그러나 다른 남자는 말이 없다. 창가에 선 남자가 다시 목쉰 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 도시에,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숲속 깊은 곳에, 한없이 짓누르는 이 돌무더기에, 우리에게 말한마디 건네는 이 없고, 귀 기울여 듣는 이 없고, 눈 마주치는 사람도 없는 이 도시에 깊이 묻혀 있어. 얼굴 없는 얼굴들이, 이름 없이, 수도 없이 제멋대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이 도시에 관심도 없이, 무정하게, 머물 곳도 없고, 시작도없고, 항구도 없이. 해파리들이야. 시간의 흐름에 떠도는 해파리들. 심해에서 떠올라 흔적도 없이 다시 이 세상 물속 깊이 가라앉는 초록색, 회색, 노란색, 흐릿한 회색의 해파리들.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