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존중이 사라진 사회, 혐오가 먹고사는 법
친구들에게 요즘 수치심을 주제로 책을 쓴다고 말해보자. 각양각색의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나의 일상이었다. 나는 각양각색의 수치심에 대해 들었다. 여드름이 심해서, 섹스를 못 해봐서, 수학을 잘 몰라서 겪은 창피도 있었고, 고등학생 때 탈의실에서 있었던 어두운 기억, 캠프 지도자나 의사, 교내 인기 운동선수에게 당한 모욕도 있었다. 이 수치심들은 내 마음으로 흘러들어와 공포와 고통이라는 거대한 웅덩이를 이루었다. 이 잔혹한 감정의 웅덩이는 들여다보기 힘들었고 이를 이해하기란 더욱 힘들었다. - P5
휘틀리의 설명처럼 호피족 의식은 규범을 위반한 사람에게 몹쓸 인간이나 패배자라고 낙인찍는게 아닌, 잘못을 고치라고 충고하는 이벤트였다. 푸에블로의 광대가 구성원을 조롱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수치심의 사회적 역할을 깨닫는다. 수치심이 건전하고 심지어 다정할수도 있다는 점이다(그러려면 일단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야 한다). - P8
수치심은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인류가 처음 아프리카 사바나를 무리 지어 돌아다닐 때부터 역할을 해왔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수치심은 고통과 아주 유사하게 우리가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고통은 불과 날카로운 칼날을 조심해서쓰고 성난 말벌이 보이면 달아나라는 가르침으로 우리 몸을 보호해준다. 수치심은 다른 차원의 고통이다. 수치심은 하나의 집단이 불어넣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에 집단의 규율과금기가 새겨진다. 그 목표는 개인의 생존이 아닌 사회의 생존이다. 이런 점에서 수치심은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기대 사이의 갈등을 내포한다. 수치심은 본질적으로 우리 내면에 품고 다니는 것이다. 이는신체, 건강, 습관, 도덕 등 관련 규범에서 파생하는 감정이다. - P10
수치심과 낙인은 금기를 따르도록 강제한다. 이는 진화론의 맥락에서 합당한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이 주는 수치심은 인간이 더 풍부한 유전자 풀을 퍼뜨리게 한다. 또 대다수 사회에서 수치심은 식량 비축 같은 반사회적 행동을 못 하게 막아준다. 이런 신호를 이해하는 것이 생존 기술이다. 수치심은 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나약한 입지를 보여준다. 다윈주의로 해석하면 수치심은 경고 신호로, 사회 구성원은 이를 불길한조짐으로 받아들인다. 이 위험경보는 인류 초기부터 유래한 것으로, 당시 수치심이 드는 행동을 한 사람은 공동체에서 소외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심하면 우리는 몸서리치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다. - P11
수치심의 체계가 끊임없이 변화해도 이를 노리는 사업 기회는 늘 넘쳐흐른다. 러닝머신 구입, 코 성형수술, 광고 클릭, 가짜 명문대학위 취득, 값비싼 다이어트 프로그램 가입,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투표 유도 등 어떤 사업모형을 구상하든 먼저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불만인지. 어떻게 하면 자기혐오가 줄어드는지 찾아내야 한다. 이는 수치심산업 복합체shame industrial complex의 이해타산에서 핵심으로,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살필 것이다. 이 징벌적 생태계에서 핵심 행위자들은 내가 ‘수치심 머신The Shame Machine‘이라고 부르는 것을 운영한다. 수치심 머신은 상장기업부터 정부 공무원까지 수많은 형태가 있다. 개인도 SNS 계정이나 자기계발류의 정보성 광고를 통해 나름의 몫을 한다. 이들 모두 수치심의 무기화에 조금씩 가담한다. 이들 중에는 단지 이윤을 얻으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약자에게 주는 혜택을 거부하고이들을 교도소에 밀어 넣는 등 취약계층을 위협하는 부류도 있다. 수치심은 의지를 꺾고, 침묵시키며, 명료한 사고를 막아 편향성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수치심에 사로잡히면 피해자는 체념하고 굴복한다. 그렇게 해서 피해자는 늘 굶주려 있는 수치심 머신을 거쳐 끝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수치심 산업에서 변함없는 한 가지는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약물 중독부터 빈곤 문제까지, 이들은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실패를초래했다고 전제한다. 즉 부유해지고 날씬해지고 똑똑해지고 성공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본다. 잘못은그들이 했으니, 자책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겨도, 또 문제를 해결하고 정해진 구원의 길을 따라갈 기회가 있어도 대부분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 - P14
당시 나의 수치심은 교내 식당에서 방귀를 뀌었다든가 역사시험을 망쳤다든가 하는 개별적 사건에서 생긴 게 아니었다. 만성적인 심리 상태였다. 매일 입는 옷부터 친구들과 함께하기로한 활동까지, 나는 내 삶을 통제하며 살았다. 수치스러운 사건들, 그러니까 체육관에서 체중을 쟀던 일이나 먼 훗날 상점에서 겪은 일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옷은 몇 주간의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만 사기로 했다. 이 말은 곧 내 모든 옷이언제나 불편할 정도로 꽉 끼었다는 뜻이다. 그런 식으로 요요현상이 온 나에게 벌을 내렸다. 결국 나는 뚱뚱했을 뿐 아니라 불편하게 살았고 습관처럼 자기 처벌을 했다. 이것이 바로 수치심이 하는 일이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수치심이 내리는 명령을 받들고 산다. 수치심은 언어나 종교처럼 내면에 깊게 자리 잡는다. 또한 머릿속에도 장벽을 세운다. 그 장벽을 넘어섰다가는 창피함에 고통받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어떤 기회나 즐거움, 사랑이 와도 몸을 움츠린다. 수치심은 그렇게 삶을 잠식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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