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문제는 코네티컷 타협Conneticut Compromise 혹은 대타협 Great Compromise 이라고 하는 합의에 의해 해결되었다. 주별인구의 차이로 인한 정치적 대표성의 차별을 해소하는 한방편으로 상원의원의 수는 인구와 무관하게 모두 2명으로 동일하게 선출하도록 했다. 그리고 상원과 하원이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는 인구 대표성에 기초한 하원에서 어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상원에서 작은 주들이 힘을 합치면 인구가 큰 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견제와 균형, 이것이 미국의 시스템을 이루는 기저다. - P46

미국 대통령제가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발명된 것이라면 내각제는 ‘진화‘에 의해 오늘날의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즉 내각제는 역사적인 진화의 소산이다. 내각제는 서구다.
국가에서 국왕과 의회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발전해왔다. 국왕의 자의적 지배에 대한 반발로 의회는 세금이나 인신구속 등의 사안에 대해 자신들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회의 영향력이 중대한 것이다. 이후 점차 의회가 국왕을 대신해서 통치를 담당하게 되었고, 내각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내각제, 의회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내각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의회가 행정 권력을 선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각제는 의회에서 선출한 권력이기에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만 행정권력을 장악할수 있다. 이처럼 의회 내에서 다수 세력을 확립할 수 있어야 행정 권력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각제는 권력 융합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 대통령제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과 달리, 내각제는 입법부를 장악해야행정부를 장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여소야대는 드물며,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대립이나 갈등도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P47

그러나 이후 우리 정치의 역사는 이러한 견제받는 대통령에 대한 구상과 달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권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져왔다. 이러한헌정 왜곡은 이승만 대통령 첫 임기 말인 1952년 7월 7일의 개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제헌국회는 의원의 임기를2년으로 정했기 때문에, 1950년 5월 30일에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그런데 이 선거 결과 이승만 대통령의 지지 세력이 크게 줄어들고 만다.
한편 대통령 임기는 4년이었기에 1952년 8월 5일 제2대대통령 및 제3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접선거였으므로,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은 국회 내 다수를 차지하는 반이승만 의원들 때문에 그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었다. 하나의 사례를 들면, 1951년 11월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국회에 보냈는데 표결 결과 찬성 14, 반대 143, 기권 1표로부결되었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부결된 것이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해 모든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백골단‘, ‘땃벌떼‘ 등 깡패 조직들을 동원해서 관제 데모하는 것을 넘어, 국회 통근 버스를 헌병대를 동원해 끌고 가 야당 국회의원 10명에게 국제공산당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씌워 구속하는 등 공포 분위기로야당 의원들을 압박했다. 이것이 바로 1952년 5월 25일에일어난 ‘부산정치파동‘이다.
국회의사당을 군과 경찰이 삼엄하게 에워싸고 또 대규모 관제 데모대가 시위를 하는 공포 분위기 속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은 기립 표결로 통과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권력 연장을 위해 헌법을 강제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때 이승만이 계엄령을 선포하며 군을 동원한 것은 후에 군이 정치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 P51

그로부터 2년 뒤 또 다른 헌정 왜곡이 1954년 11월29일에 일어난다. 이른바 ‘사사오입개헌‘으로 불리는이 사건은 대통령의 3선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핵심으로한다. 이를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재선에 의해 1차 중임할 수 있도록 했는데, 부칙으로 공포당시의 대통령의 경우는 1차 중임의 제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해 사실상 이승만은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 P54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국회가 해산되고 헌법의 기능이일시 중지되면서 국가의 통치를 위해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최고통치기관으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해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을 모두 장악하고 여기에 국회의 권한을 부여했다. 아울러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헌법재판소 규정은 효력 정지하도록 했다.
국민의 기본권은 혁명과업 수행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했다. 이전의 헌법 또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효력이 생기도록 했다.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실상 무한정의 권력을박정희에게 주도록 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헌국회당시 한민당이라는 견제 세력이 있었지만 박정희는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고 통치 구조를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1961년 8월 21일 국가재건최고회의장 박정희는 정권이양시기 및 방법 등 중대 정책에 관해 명시한 성명서 ‘정권이양시기에 관한 성명‘을 통해 정부형태를 대통령 책임제로 한다는 내용을 명시한다.
이와 함께 헌법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위해 강력한 대통령제의 지지론자인 루퍼트 에머슨Rupert Emerson의 자문을 활용해 새로운 통치구조를 마련해갔다. 그러나 실제로 헌법심의위원회나 에머슨 교수는 주도적 역할을 하기보다 쿠데타 주축 세력이 의도하고 있는 정부 형태를 정당화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대통령제를 복원하는 헌법 개정안을 1962년 11월 5일 의결 공고하고 12월 26일 국민투표를 통해 정식 공포한다.
이때부터 부통령제는 폐지된다. 부통령제의 폐지는 강력한 대통령제의 상징적 조치인데,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을 대신할 존재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P59

이처럼 유신과 제5공화국을 거치면서 강화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축소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부통령제는87년 개헌에서도 도입되지 않았다. 당시 노태우 쪽에서는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이 대통령-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할 가능성 때문에 이에 부정적이었는데, 실상은 김영삼, 김대중 모두 자신이 부통령이 될 가능성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 역시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형태를 선호했기 때문에 애당초부터 부통령제에 부정적이었다. - P72

사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서실, 내각, 집권당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움직여야한다. 혼합형 대통령제로 만들어졌고 그 특성이 계속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의 관계, 대통령과 내각, 곧 국무회의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국회와의 관계는 미국과 같이 ‘입법부 대 행정부‘의 관계라기보다는 ‘정부-여당 대 야당‘이라는 형태로 이어져온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집권당이 상호 연계되고 비서실이 이러한 관계를 보조해주는 것이 한국형 대통령제의 작동 방식이었다. - P76

청와대 비서실의 규모와 영향력이 계속 확대되는 것은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단임 대통령제라는 점이다.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은 짧은 임기 내에 자신의 치적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관들에게 맡기거나 관료 조직에 의존하기보다 비서실을 통해 주요 정책을 직접 챙기면서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두 번째 이유는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자의 선거운동이 캠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후보자의 이미지나 역량뿐만 아니라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투표 결정을 할 때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그 정당의 대통령 후보자가 볼 때 당은 그 이전의 후보 경선 과정에서 우리 편과 다른 사람의 편으로 분열된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따라서 당에게 의존하기보다 ‘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선거 캠프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리고 당선 후에는 정당보다 당선된 대통령과 개인적 관계를 맺은 이들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캠프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청와대 비서실의 요직에 등용된다.
세 번째 이유는 관료제에 대한 불신이다. 과거 박정희는 종신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관료들이 보기에 대통령은 마치 대기업의 총수처럼 보였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대통령의 눈에 들게 되면 고위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5년 단임에 빈번한 정권 교체로 그와 같은 기대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후임 대통령이 전임자의정책을 폐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임 정부의 핵심 정책을맡아 열심히 일한 것이 인사 평가 때 ‘전임 정부 사람‘, 심지어 ‘적폐‘로 몰려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국회나 언론이나 이익집단의 눈치를 봐야 할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라면 가능하면 복지부동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말 잘 안 듣는 관료제에 의존하기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책을 이끌고 나가려는 경향이 생겨날 수 있다. - P81

여기에 국가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장기적인 국가 과제의 설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의 대통령과 대통령 간의 관계가 ‘단절적‘이기 때문이다. 후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결코 이어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전임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인 정책일수록, 다시 말해 큰 관심을 갖고 많은 예산을 투입한 정책일수록 후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기 쉽다. 신임 대통령은 이전의 정권에 대한 ‘부정의 정치‘를 반복한다. - P92

여러가지 대안이 제기되었디만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것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대안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5년 단임이든 4년중입이든 결국 마찬가지의 대통령제이기 때문이다.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제가 4년 중임이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외에 4년 중임이 적절한 대안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또 있다.
4년 중임제는 사실 8년의 임기를 허용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재선에 실패한다면 4년 단임 대통령이 되고만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못한 경우다. 그리고 현실적으로중임을 허용하면 첫 번째 임기의 가장 큰 목표는 재선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재선을 위해서라면 첫 4년의 주요 정책은 인기영합적인 형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장기적국가 과제의 설정보다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인기영합적 정책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후 재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4년은 퇴임을 향해서가고 있으므로 지금의 모습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지금처럼 정파적 이념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4년 임기를 마친 후 현직 대통령이 다시 출마했을 때 과연 공정한 선거가 가능할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 P95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큰 상황에서 사람들은 제도권 정치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성장해오면서 경험을쌓고 검증을 받아온 인물보다는 정치적 경험을 갖추지 못한 제도권 정치 외부의 인물에게 더 호감을 갖기 쉽게 되었다. 더욱이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이미지 정치‘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TV 등을 통해 갖게 된 특정 유명인사에 대한 호감, 좋은 인상이 정치적 인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대중적 호감도는 언론사의 여론조사의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정치적 경험이 없는 인물이 하루아침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포퓰리즘populism 에 매우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 - P97

정치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인 기관이 바로 국회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가 모여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모여 협의 및 논의하며 국정을 이끌고 나가는 방식이 대통령 혼자서 모든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의회 중심의 통치 형태, 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현실적으로 의회에만 힘을 실어주기 힘든상황이라면 대통령에게 중재적인 역할을 할 수있는 권한을 부여하되, 실질적인 통치는 국회에서 하는 시스템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의회가총리를 선출하여 내각을 구성하게 하고 의회에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각제적 속성을 갖지만, 대통령이 총리 지명이나 법률안 거부권, 혹은 의회해산권 등 총리와 내각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부여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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