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 정치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큰 기대감 속에 선출된 대통령은 얼마 지나고 나면 실망과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고,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눈앞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집착한다.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그것들이 해결될 기미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굳건한 정치적 기득권 구조 속에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들은그들의 답답함을 표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 P11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처음 ‘국무총리제‘를 채택하는데,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국무총리 대리이며 내무총장인 안창호가 상해임시정부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국무총리제였던 임시정부의 통치 형태는 얼마지나지 않아 대통령제로 바뀌는데, 이승만이 대통령제를 강하게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한성임시정부에서도집정관총재로 선임되었고, 이때 국무총리총재로는 이동휘가 선임되었다. 이승만은 대외 활동을 하면서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총리 대신 집정관총재를 ‘President‘로 번역하여 사용했다. 결국 상해임시정부는 이승만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무총리를 정부 수반으로 하던 통치 형태로부터 9월 11일 ‘임시 대통령‘을 두는 대통령제로 정체를 바꾸게 되었다. - P23
이후 1925년 4월 7일 대한민국 임시헌법은 다시 개정되어 ‘국무령제‘로 바뀐다. 1919년 9월 이승만의 주장에 따라 대통령제로 개정되었지만, 1919~1925년 사이에 이승만은 겨우 6개월 정도 상해에 머물렀을 뿐이다. 또한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 자금이 이승만의 외교 활동비로 집행되면서 송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임시정부 측과 갈등을 빚게 되었고, 과거 이승만이 미국의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대통령에게 한국을 위임통치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던 것도 논란이 되었다. 이 때문에 1925년 3월 이승만에 대한 탄핵안이 임시의정원에서 통과되었다. 그 이후 4월 7일개헌을 통해 정부 형태는 내각책임제로 바뀌게 된다. - P25
그 이후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임시정부의 내부 조직도 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40년 10월 9일 개정된 대한민국 임시약헌에 의해 정부 형태는 ‘주석제‘로 바뀐다. 이때부터 국무위원회는 주석과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주석, 국무위원은 임시의정원에서 선임하며 임시의정원에 대해 책임을 지게 했다. 이전의 임시약헌에서 주석은 호선했지만 1940년 개정된 임시약헌에서 주석은 임시의정원에서 3년임기로 선출하도록 했으며, 임시정부를 대표할 뿐 아니라국군을 통솔하는 등 주석에게 강화된 권한을 부여했다. 제27조 국무위원회의 주석의 직권은 다음과 같다. 1. 국무위원회를 소집한다. 2. 국무위원회의 회의 시에 주석이 된다. 3. 임시정부를 대표한다. 4. 국군을 통감한다. 5. 국무위원의 부서로 법률을 공포하고 명령을 발한다. - P27
다음으로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의안이 있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 따라 결정된 신탁통치에 가장 격렬한 반대를 가한 것은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이었다. 김구는 임시정부 내무부장인 신익희의 이름으로 미군정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 경찰, 상인 들은 파업하라는 포고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던 소련과 달리 남한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미군정 입장에서는 마치 쿠데타와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미군정은 자신들 이외의 어떠한 형태의 권력기관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이 모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된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김구가 반탁과 관련한 포고령을 내리자, 이후 이들의 관계는 매우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신탁통치는 좌익과 우익 간의 이념적 대립이 본격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한편으로는 우파 진영 내에서 반탁의 움직임을 통해 정치적인 경쟁자들이 하나의 틀 안에 모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 P32
그러자 이승만은 헌법 초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이틀 전 21일 오후 내각책임제 헌법하에서는 "어떠한 지위에도 취임하지 않고 민간에 남아서 국민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심각한 정치적 협박이었다. 당시 이승만이 국민들 사이에서 지니고 있던 정치적 권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승만이 빠진 새 정부의 출범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좌파는 물론 김구 등 민족주의 우파, 김규식 등의 중도파가 단독 정부 수립에 불참한 상황에서 이승만마저 참여를 거부한다면 정치적 정당성의 면에서 심각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민당측은 이승만의 요구를받아들이기로 하고 인촌 김성수의 집에 모여 내각제로 되어 있는 헌법의 초안을 대통령제로 수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정안은 순수한 의미의 대통령제가 아니었다. 수정된 헌법은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혼합형적 특 ㆍ성을 보였다.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고, 내각제적 요소인 대통령의 국회해산권과 국회의 국무원 불신임권한은 삭제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에서 4년으로 줄였고 중임을 허용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각각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으며, 국무원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기타의 국무위원으로 조직되는 합의체로서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하도록 했다. •••••• 또한 국무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행정 각부 장관 또한 국무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행위는 문서로 하며 모든 문서에는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1944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같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규정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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