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1월 20일 오전 9시30분, 여운형 · 장덕수·최근우 · 신상완 일행 네 명은 두 대의 자동차에 분승해서 척식국拓殖局장관 고가의 저택으로 향하였다. 고가는 모양을 일본에 오도록 공작한 배후 인물로 동양과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이었다. 어떤 기록에는 "매일 오전부터 7~8시간 동안을 7~8일 계속했다"고 적혀 있고, 고가 자신은 의회 답변에서 네 차례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여러 차례 만났고 만날 때마다 장시간 공방전을 벌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 내용을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가는 ‘자치운동을 하시오‘이고, 몽양은 ‘독립운동을 하겠다‘로요약된다. 고가는 비교적 금도(襟度)를 갖춘 온후한 사람이었다. 대면할 때는 늘 원탁회담이고 이편에서는 네 사람, 저편에서는 차관·비서들이 동석하였다. 첫날의 회담에서는 가장 기본적이요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고가와 여운형의 문답 내용을 여러 기록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고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조선 우국지사들을 진심으로 동정한다. 그러나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해야 할 줄로 안다." 그는 계속해서 일본의 부강)을 말하고 조선총독부정책에 일치협력할 것을 말한 다음 사설을 늘어놓았다. "나 개인은 합병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미 합병이 된 이상 개인의 의사는 소멸되었다. 한일합병은 회사합병과 같다. 한 회사가 실력이 부족하면 실력 있는 회사에 합하는 것이 쌍방의 이익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이었다. - P119
한일합병과 회사합병을 동일시하는 고가의 궤변에 대해서 동양은 다시 언급했다. "회사합병으로 말하면 작은 것은 큰 것에 대해 반드시 손해를 입게 마련이다. 미국의 석유회사가 상업정책으로 무수한 작은 회사를 합병하여 치부하는 것이 그 실례다. 우리는자손만대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동양 평화를 위해 기필코독립을 쟁취할 것이다. 만일 동양단결과 동양 평화의 필요를 아는 사람이라면 조선독립을 가장 긴급한 문제로 삼아야할 것이다." 여운형은 이처럼 전제한 다음 고가가 되풀이해 말하는 실력문제에 관하여 언급했다. "실력을 양성하는 데는 자유발전이 최대 요건이요 최속성공이다." - P121
여운형은 이런 분위기에서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해보았자 당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용솟음치는 울분과 조국애를 억제할 길이 없었다. 솟구쳐나오는 그대로의, 하여야 할 말을 굽힐 수는 없었다. 그는 몇 년 전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태닉호의 예를 들었다. "호화롭기를 세계에 자랑하던 타이태닉호가 대서양에서 물 위로 100분의 9밖에 안 보이는 빙산덩이를 작다고 업수이 보고서는 물 속에 잠긴 10배 이상의 큰 덩이를 생각지 않고 돌진하다가 빙산에 부딪혀서 배 전체가 침몰되고 말았다. 그대들은 이와 같은 만용의 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조선인이 부르짖는 독립운동만세는 물 위에 나온 소부분의 빙산이다. 모시 수 없는 것이다. 모시할하면 세계인류의 정의에 부딪혀 일본은 멸망의 구렁텅이에빠지고 말 것이다." 다나카가 발끈하여 내뱉듯외쳤다. "일본이 망하면 동양전체가 망한다." 이에 몽양은 차분하고 냉랭한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조선 속담에 초가삼간이 다 탄대도 빈대 죽는 것이 시원하다는 말이 있다. 동양이 다 망하여도 일본이 망하는 것을통쾌히 생각하는 것이 우리 조선민족의 솔직한 심정이다." - P130
동양의 여러 요인들과의 회담 기사와 제국호텔에서의 기사가 매일같이 신문에 보도되자, 일본의 일반 지식과 진보적 인사와 학생들은 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동경제국대학 교수 요시노(吉野)가 주관하는 신인(新人會)에서는 동양 환영회를 베풀었다. 신인회는 일본의 신사상, 즉 사회주의를 연구하는 모임으로 신진인사와 진보적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환영회는 오스기(大杉榮), 모리토(森戶),야마카와(山川均), 사카이(利彦), 야마자키(宮崎龍介) 등100여 명이 모였고, 한국인은 김준연 외 몇 사람이참석했다. 중국인도 있었다. 몽양은 이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였다. "조선독립운동은 일시적인 감정적 폭발이 아니다. 이는오직 조선인의 영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동양과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다." 이에 사회를 맡고 있던 야마자키가 답하였다. "여 선생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안심이 된다. 조선독립운동이 민족적 감정으로 된 것이라면 일본과 조선의 관계는불안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진실로 여선생의 말과 같이 조선독립이 인류 전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조선이 독립함으로써 일본과 조선이 서로 화평할 수 있다. 일본인 중에도 조선독립을 기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 연회는 시종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폐회에 앞서오스기의 선창으로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몽양 일행의 감격은 여간이 아니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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