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헤어진 아내나 그녀와 동침한 옛 동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일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제대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지만, 이윽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런날을 맞닥뜨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기노‘라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