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정한다. 정부는 법률을 집행한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사회와 경제가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 인프라와 하드 인프라를 제공한다. 만일 정부가 도로, 항만, 교육, 기초 연구를 제공하지 않으면(혹은 다른 주체가 이상의 일을 하도록 조처를 하거나, 하다못해 다른 주체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으면 평범한 기업들은 번창하지 못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투자를 <공공재>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기초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공재>다. 현대 사회는 집단적인 행동을 필요로 한다. 국가는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공공 투자를 실현한다. 민간 투자자는 이런 투자로부터 비롯하는 광범한 사회적 편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 둘 경우 공공재에 대한 투자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과 세계는 정부 후원 연구 덕분에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 몇십 년전에는 주립 대학교들과 농업 지도 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진 연구 덕분에 농업 생산성이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정부 후원 연구는 정보 기술혁명과 생명공학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미국은 수십 년째 기간 시설, 기초 연구, 교육에 대한 투자 부족을 겪고있다. 민주당, 공화당의 재정 적자 감축 공약과 하원의 세금 인상안 거부등의 동향을 고려하면 이 분야에 대한 투자 감소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 P202
이처럼 중요한 공공 투자가 방치되고 있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부의 편향적인 분배에서 비롯한 결과다. 부와 관련해서 사회 계층 간간극이 벌어질수록, 부자들은 공익을 위한 지출에 저항감을 느낀다. 부유층은 공원이나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나 신변 안전을 정부에 의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비로 이런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부유층은 서민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 P203
지대 추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경제를 왜곡한다. 가장 중요한 측면은미국의 <인재>가 엉뚱한 곳에 배분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총명한 젊은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직업에 관심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의료나 교육, 공무원 등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일부는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물론 그중에는 항상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여러 해 전부터 미국 최고의 인재들은 금융업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고, 갈수록 이 비율이 높아졌다. 수많은 인재들이 금융업에 몰려 있으니 그 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룬 <금융계의 혁신> 중 대다수는 규제를 피해 갈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고, 실제로 장기적인 경제 성과를 위축시켰다. 이런 금융계의 혁신은 인류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 트랜지스터나 레이저 등의 진정한 혁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미국 경제에서 지대추구 행위의 원천은 금융 부문만이 아니다. 충격적인 일은 그 밖의 중요 부문들에서도 경쟁 제한 행위와 지대 추구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의 장들에서 언급한 대로 하이테크 부문(마이크로소프트)도 여기에 속한다. 이 밖에도 의료 서비스 부문과 전기통신 부문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약품의 가격은 생산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은데, 이는 제약 회사들이 의사들과 환자들이 자기 제품을 사용하도록 설득하는 데 엄청난 돈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연구 개발에 지출하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마케팅에 지출한다. 그마나 진행되는 연구개발 자체도 대부분 지대추구다. 경쟁사의 대박 상품이 올리는 고수익을나눠 가지기 위해서 유사 약품me-too drug을 생산하는 데 연구 개발비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돈이 국가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진정한> 연구와 <진정한> 투자에 쓰인다면 우리 경제는 얼마나 큰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지 상상해 보라. - P207
사법 체계는 개인과 기업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인을 제공하여 경제의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군비 경쟁이나 다름없는 사법 제도를 가지고 있다. 즉 사법 제도에 참여하는 양방은 상대방보다 뛰어난 법률가를 고용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보다 더 많은 돈을 쓰려고 애를 쓴다. 뛰어난 법률가는 수임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결국 사건이나 사안의 내용보다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의 액수가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 보니, 소송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소송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동과 애초에 소송 제기를 막기 위한 행동의 측면에서도 자원의 엄청난 왜곡이 일어난다. 인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법률가가 적은 나라일수록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일부 연구들은 소송 빈도가 높은 미국 사회의 특성이 거시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암시하고 있다. 또 다른 연구들은 어떤 사회에 인구대비 법률가 비율이 높으면 인재들이 과학이나 공학 같은 보다 혁신적인 활동 대신에 법률가로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경제의 생산성이 저해된다고 주장한다. - P211
외교 정책은 국가 간 이익의 균형과 국가 간 자원의 균형을 바로잡는 행위다. 상위 1퍼센트가 전쟁을 벌이면서도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 상황에서는 균형과 억제라는 개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기업들과 정부 조달 업체들에게 떨어지는 것은수익뿐이다. 세계 각지의 정부 조달 업체들은 정치 기부만 제대로 하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도로 및 건물 건축 사업을 선호한다. 특히 군대는 미국 정부의 조달 업체들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수익을 제공한다. - P213
경제학자들은 <상대 소득>과 상대적 박탈감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를테면 개인의 행복감은 개인의 절대 소득이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득에 대비된 상대 소득이다. 선진국들에서는 상대 소득이 대단히 중시된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총생산 성장률과각국 국민의 주관적인 행복도 간에 장기적인 상관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 수준을다른 사람들의 소비 수준만큼 끌어올리려는 갈망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소비 생활을 하고, 장시간 동안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다. 오래전에 케인스가 던진 질문이 하나 있다. 수천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주의 해결이라는 생존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전례 없는 생산성 증대가 나타났고, 한계 생존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짧은 시간만 일을 해도 생활필수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이 가져다준 혜택을 어떤 식으로 누릴까?"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여가 시간을 늘리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화를 더 많이 소비하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이론만으로는 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측정하자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재화의 소비도 늘리고 여가 시간도 늘리는 결정을 내릴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일반적인 추정과 부합하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달랐다. 미국 사람들은 여가 시간(여성들이 노동 인구로 추가된 경우에는 가구당 여가시간)을 줄이고 재화의 소비를 늘렸다. 이런 차이를 해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실마리는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그리고 다른 사람의 씀씀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개인의 태도)이다. 미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뒤처지지 않게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 시간을 늘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식의 무한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250년 전에 이런 가능성을 지적했다. <모든사람이 우위를 다투는 이런 경쟁에서는 누군가가 위로 올라가면 다른 누군가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일반적인 경제 이론으로는 케인스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지만, 미국 사회는 충격적인 해답을 내놓고 있다.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서 >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말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가족을 위한 여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가족의 삶의 질은 떨어진다. 즉, 수단과 공언된 목적이 모순을 이루는 결과가 나타난다. - P217
두 번째 현실적인 문제점은 진보주의자들이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는주장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체이트가 표현했듯이 결과의 평등을 옹호하는것이 아니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소득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있는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어느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성공할 수없다. 개발도상국에는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열정이 넘치는데도 가난하게사는 사람들이 많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수 세대에 걸친 집단적인 노력으로 구축된 물리적, 제도적 기반 덕분에 혜택을 누리고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상위 1퍼센트가 이 시스템이 제공하는 혜택을 부당하게 많이 차지하려 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미국 경제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때문에 생산성 감소, 효율성 감소, 성장 둔화, 불안정 심화 등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의 수위를 낮출 때 얻어지는 편익은 그 비용을 크게 상회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우리는 불평등이 부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다양한 경로들을 확인했다. 심각한 불평등이 경제 성장의 둔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러 나라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경험해 온 사례에서 확인된다. - P231
공정하지 못하다는 믿음이 강해지면, 사람들은 시민적 덕목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벗어던진다. 사회적 약속이 무너지고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가 깨지면, 사람들은 정치에 환멸감을 느끼거나, 이탈하거나, 그보다 더 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의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점점깊어져 가고 있다." 고약한 일이지만, 정치 시스템을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조종하고자하는 부유층은 이런 결과를 환영한다.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혹은 그나마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정치 시스템이 상위 계층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상위 계층 사이에서는 정치에 참여하려는 유인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결국 정치 시스템은 자기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베풀게 된다. 한편으로 정치적 환멸감에 빠진 투표자들을 투표소로 <유인>해야 하는상황이 되면 투표 행위의 비용이 상승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환멸감이 심하면 심할수록 투표 비용은 상승한다. 그런데 투표 비용이 커지면 커질수록 금전적인 이해관계의 위력은 강해진다. 부유한 사람들이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 과정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투표를 단순히 시민적 덕목이 아니라 수익을 요구하고 그것을 얻어 낼 수 있는 일종의 투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 과정을 만들어 내고, 이런 결과는 나머지 유권자들의 정치적 환멸감을 더욱 강화하는한편으로 돈의 위력을 더욱 강화한다. - P238
발리의 산간 지역이나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공동체들체면관개 농업에 의존하는 공동체들은 협력을 하지 않고서는 수자원을 관리하고 관객 수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 공동체들은 결속력이 강하고 사회적 자본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여 <사회 계약>을 어기는 일이 전무하거나 매우 드물다. ••••••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자, 소련 붕괴의 여파로 러시아의 국민총생산은 크게 감소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을 해명하지 못했다. 물리적 자본과 인적 자본, 자연 자본은 소련 붕괴 이전이나 이후나 전혀 변동이 없었다. 경제를 왜곡시켜 온 과거의 중앙 집권형 계획 경제가 폐지되고 시장 경제가 대신 들어섰으니, 이런 자원들이 예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제 분석이 전혀 고려하지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74년간의 공산당 지배와 민간 사회 조직에 대한 억압 때문에 사회적 자본이 무너져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국가를 결속시켜온 유일한 요소는 중앙 계획형 시스템과 극심한 독재였다. 이 시스템이 무너지자 국가와 경제를 결속시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본은 바닥을 드러냈다. - P241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신뢰>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인적 자본이나 물리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경제의 생산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경제의 생산성이 높다. 광의의 사회적 자본에는 공공 부문 및 민간 부문의 효율적인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하는 요소들이 포함된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자본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바로 신뢰다. 신뢰가있는 경제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품위를 잃지 않고 만족스럽고 공정하게 대우받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받은 것과 같은 대우를 베풀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접착제다. 사람들이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접착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사회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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