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빈부 격차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교육 기회의 격차와강 격차, 사회적 이동성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면관계상 여기에서는 교육 기회의 격차만을 따져 보자. 한국은 공교육 비중이 낮아 세계에서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이에 따라 집안의 재력에 따라 학생들의 진학 기회가 크게 달라진다. 이른바 포커판에서처럼 판돈(=사교육비)을많이 댈 수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따라 사립 초등학교와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 등으로 이어지는 <성공 경로>에 일찍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소득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교육의 <승자 독식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미 환상이 된 지 오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의예과 신입생의 43퍼센트, 법대 신입생의 38센트가 자신이 상류층 출신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상류층 응답 비율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이처럼 상류층 출신들이한국의 지배 엘리트로 성장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법조계가 대표적인데, 특목고가 생겨난 이후 외고→ 서울대 → 법조계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는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미 대원외고를 나온 현직 판검사가 129명으로 전통의 명문고인 경기고 55명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끊어지고 기회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공식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소속 국가들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의 67퍼센트가량이 국공립대 등록금을 내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78퍼센트가 사립대 등록금을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은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고 대학 교육의 수준도 훨씬 낮은 나라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은 더 높은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개탄하는 미국의 등록금 현실도 한국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다수 국민들을 희생해 경제 성장의 과실을 재벌 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준 탓이 크다. 특히 상시적인 정리 해고 등을 통해 가계 소득의 주축인 일자리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 것이 국민 대다수의 빈곤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자리 불안에는 부동산 거품, 수출 편향 경제,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 요인들이 고루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재벌독식 구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재벌 독식 구조가 강해지다보니 중견,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산업생태계가 사라지고 골목 상권까지 무너지는 상황이 되었다. 일자리의 88퍼센트 가량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담당하는데 이들 일자리가 점점 위축되거나 불안한 일자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례로, 두부 시장에 CJ나 대상과 같은 대기업이 들어와 수많은 중소 두부 공장이 문을 닫은 것이나 동네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이 대형 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에 밀려난 것이 대표적이다. 재벌 그룹의 부와 이익은 늘어났으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무너졌다. 그렇다고 재벌 대기업들이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을 확대한 것도 아니다.  - P16

서문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떨쳐 일어나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외치며 변화를 요구하는 역사의 순간이 있다. 격동의 시기였던  1848년과 1968년에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두 해는 각각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2011년이 또 다른 그런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북부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젊은이들의 시위는 인접한 이집트로 확산되고, 뒤이어 중동의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시위의 불꽃이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졌지만, 어떤 곳에서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같은 장기 독재자를무너뜨리고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불러왔다. 얼마 후 스페인, 그리스, 영국, 미국, 그 밖에 세계 도처의 사람들이 제 나름의 이유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갔다. - P25

월스트리트 금융계를 겨냥하던 시위운동의 초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사회 전반의 불평등 문제로 옮겨 갔다. 시위대는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내가 배너티 페어 Vanity Fairs지에 썼던 기사의 제목 〈1퍼센트의, 1퍼센트를 위한, 1퍼센트에 의한〉을 구호로 외쳤다. 당시 나는 이 기사에서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와 상위 계층에게 지나치게 큰 발언권을 주고 있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를 파헤쳤다.
3세계 도처의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주제에 공명하고 있었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이 책은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공업 국가들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 세 가지 주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정책들이 조화롭게 결합하여 시행될 때에만 우리는 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 P27

우리 시스템이 훼손하고 있는 또 다른 근본적인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공정한 승부> 의식이다. 금융업자들은 빈곤층에게 약탈적인 대출을 시행하거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주택 담보 대출을 제공하거나 초과 인출 수수료라는명목으로 국민들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거액을 뽑아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가운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그리고 지금까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은 극소수로 보였고, 내부 고발에 나선 사람들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은 대부분 더 많은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행을 확인할 때마다 사람들의 가치관에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가난하고 못 배운 미국인들이 약탈 대상으로 이용되어 나타난 결과였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 <윤리적인 타락>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금융업을 비롯한 모든 경제 부문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덕성이 훼손되었다. 규범이 변화하여 많은 사람들의 도덕성이 훼손된 사회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다. - P35

시장이 대다수 국민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우리는 기업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과 불의, 환경 훼손 행위, 빈곤층착취를 묵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 자본주의는 공언했던 약속을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사회에 엉뚱한 비용을 떠안겼다. 시장 자본주의는 불평등, 환경 오염, 실업을 낳았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용인되고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가치의 타락을 낳았다. - P36

효율적인 사회 보호 시스템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이다. 시장이 실업 혹은 장애 등에 대해 적절한 보험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실업 급여나 장애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대가를 이미 직간접적으로 지불했다. 다시 말하면 이들과 이들의 고용주들은 실업 보험과 장애 보험 기금의 구축에 필요한 실업 보험 분담금, 장애보험 분담금 등을 납부했다. 실업 및 장애 보험 기금 조성에 기여한 만큼그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사회 보호는 사회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을 보호해 줄 안전망이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고위험 고수익 활동에 도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보호가 제대로 보장되는 일부 국가들은 최근의 침체기에도 미국보다 훨씬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P57

노예제 폐지 운동, 시민권 운동, 여성 운동, 성소수자 인권 운동 등 미국에서 전개되어 온 위대한 운동들은 개인적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필요성을거론한 적이 없다. 개인적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부각시킨다고 해서 흑인 차별의 관행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운동들을 추동한 것은 전혀다른 힘, 즉 강한 도덕적 힘과 강한 정신적 힘이었다. 이런 운동들의 전개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와 관련해서, 국가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무엇이 인간적인 것인가와 관련해서, 그리고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맺고 있는 관계와 관련해서 강한 도덕적 힘과 정신적 힘을 발휘했다. • 삶의 기술, 사랑의 기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기술과 관련한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개인적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없다.

내가 보기에 웨스트는 불평등 위기의 진정한 해법은 단순히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 - 단순히 번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의 공동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공동체다. 모든 공동체는 내부에 불행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도와준다. 소득이 없거나 충분치 않아 생계가불안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것은 미국 경제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것, 따라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9

나는 우리가 경로를 이탈한 시점이 언제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우리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로에 접어들게 된 시점이 대체 언제냐고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금융 규제 완화와 조세 제도의 누진성 축소는 불평등의 신화를 촉진시켰다. 규제 완화는 경제의 과도한 금융화를 야기했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의 전체 기업 수익 가운데 무려 40퍼센트가 금융 부문으로 흘러들어 갔다. 유감스럽게도 후임 대통령들도 역시 규제 완화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부자 감세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소득세 최고 세율은 레이건 행정부 때 처음으로 70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인하되었고, 1993년 클린턴 행정부 때 39.6퍼센트로 다시 인상되었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다시 35퍼센트로 인하되었다. 하지만 당시 부유층 소득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자본 이득(상위 0.1퍼센트가 올리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에 대한 세금은 1997년 클린턴 행정부 때 20퍼센트, 부시 행정부 때 15퍼센트로 대폭 인하되었다. 부유층이 선호하는 또 다른 소득인 지방채 이자소득에는 세금이 면제된다. 미국 상위 400대 소득자의 평균 세율은 19.9퍼센트에 불과하다. 상위 1퍼센트 미국인들의 실효 소득 세율은 20퍼센트 초반으로, 중위 계층이 부담하는 실효 소득 세율보다 낮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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