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감염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알아보는 것은 간단하지만, 거기에 이른 과정은 예측을 크게 벗어난다. 자크 페팽의 조사에 의해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아이티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퍼진 과정이 새롭게 밝혀졌던 것이다. 일단 1966년경 단 한 명의 감염자로부터 에이즈 바이러스가 아이티 전역에 빠른 속도로 퍼졌다. 이 사실은 1982년에야 포르토프랭스 Port-au-Prince 빈민가에 거주하면서 한 소아과 의원을 통해 홍역 임상시험에 참여한 553명의 젊은엄마들의 혈액 검체에서 밝혀졌다. 검체들을 후향적으로 검사한 결과 7. 8퍼센트의 여성이 에이즈바이러스 양성으로 판정되었다. 어떤 사회에 새롭게 도입된 바이러스치고는 놀랄 만큼 높은 수치였으므로 페팽은 틀림없이 초기에 성적접촉을 능가하는 ‘매우 효과적인 증폭 기전‘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능성있는 기전을 찾아냈다. 바로 혈장매매다.
혈장이란 혈액에서 혈구를 제거한 후 남는 액체 성분으로 항체와알부민과 응고인자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매우 유용하다. 1970년 무렵, 크게 증가한 혈장 수요에 발맞추기 위해 혈장분리교환술plasmapheresis 이라는 기법이 개발되었다. 기증자의 혈액을 여과시키거나 원심분리하여 혈장과 혈구를 분리한 후, 혈구는 다시 기증자의몸에 넣어주고 혈장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한 명의기증자로부터 1년에 고작 몇 번밖에 채취할 수 없었던 혈장을 훨씬 자주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증자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돈이 필요해서 신체적 부담을 감수하는 판매자들이다.)  - P607

생태학자들은 이런 사건을 가리켜 대발생outbreak 이라고 부른다. 질병의 유행 outbreak 이라고 할 때보다 훨씬 일반적인 용법이다. 그 속에질병의 유행이 포함된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어쨌든 보다 넓은 의미에서 대발생이라는 말은 단일한 동물종의 개체수가 갑자기 엄청나게늘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대발생을 일으키는 동물종이 있는가 하면,
일으키지 않는 종도 있다. 레밍 (lemming, 나그네쥐)은 대발생을 일으키지만수달은 그렇지 않다. 메뚜기 중 일부, 생쥐 중 일부, 불가사리 중 일부종은 대발생을 일으킨다. 분류학적으로 같은 집단에 속하는 다른 동물종들은 그렇지 않다. 딱따구리가 대발생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울버린(wolverine, 북미산 족제비과에 속하는 맹수-역주)이 대발생을 일으킬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편, 나비목(Lepidoptera, 나방과 나비)에 속하는 곤충들중에는 천막애벌레뿐만 아니라 매미나방 gypsy moth, 독나방 tussock moth, 낙옆송새싹나방 larch budmoth 등 대발생을 일으키는 몇몇 종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나비목 중에서도 일반적이라기보다 예외적 존재다. 숲속에 사는 나비와 나방 중 약 98퍼센트는 비교적 낮은 밀도로 안정적인 개체수를 유지한다. 대발생을 일으키는 좋은 기껏해야 2퍼센트에불과하다. 곤충, 또는 포유동물이나 미생물 가운데 어떤 동물종이 대발생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우 복잡한 질문이다. 전문가들조차 아직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앨런 베리먼Alan A. Berryman 이라는 곤충학자는 <대발생의 원리 및 분류The Theory and Classification of Outbreaks〉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대발생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특정한 동물종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함없이 단조로운어조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관점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심각한 대발생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의 대발생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베리먼은 특히 지난 2세기 동안 일어난 인간 집단의 성장 속도와 크기를 지적한 것이다. 이런 말이 도발적이라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 P618

우리는 경이롭고, 유례 없는 존재다. 우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행성 위에서 다른 어떤 영장류도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거의 모순적인 존재다. 몸집이 크고 수명이 길면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현상, 대발생이다. - P621

"무엇보다 RNA 바이러스인 만큼 돌연변이율이 높지요. 증식은 활발한데 품질 관리가 안 된다고 할까요. 유전암호를 구성하는 각각의문자 수준에서 복제 오류가 끊임없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걸 설명하기엔 어림도 없지요. 훨씬 중요한 문제는 재배열입니다." 재배열이란 두 가지 서로 다른 바이러스 아형 사이에 게놈 분절 전체가우발적으로 교환되는 현상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게놈이 분절화되어있어 서로 다른 유전자끼리도 분절이 나뉘는 지점은 정확히 들어맞기때문에 재배열이 자주 일어난다. 적혈구응집소만 해도 16종류잖아요. 뉴라미니다아제도 9가지나 되지요. 그러면 쉽게 계산할 수 있지요?" 머릿속에서 실제로 계산해보았다. 144가지의 조합이 나왔다. 이런 변화는 무작위적이며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바이러스가죽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위적인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변이는 끝없는가능성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 자연선택, 적응, 진화의 원재료인 것이다. 독감이 그토록 놀랍고, 그토록 새롭고, 그토록 무시무시한 이유는수많은 돌연변이와 재배열을 통한 변화무쌍함에 있다. - P632

바이러스 진화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들, 수많은 질병과학자들에게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1) 가까운 시일 내에 에이즈나 1918년의독감처럼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신종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까요? (2) 그렇다면 그 질병은 어떤 형태이며 언제 발생할까요?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도 있다‘ 또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가 가장 많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RNA 바이러스, 특히 영장류를 보유숙주로 하는 바이러스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다음번 대유행이 실제로 찾아온다면, 그 병은 인수공통감염이라는 대전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P639

과학 문헌을 찾아보면 거의 동일한 신중하지만 정보에 근거한 추측을 보게 될 것이다. 현재 피츠버그 대학 공중보건대학원 학장인 유명한 바이러스학자 도널드 버크 Donald S. Burke는 1997년 나중에 책으로출판된 강연을 통해 어떤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첫 번째 기준이 가장 명확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근에 전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킨 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르토믹소바이러스(독감)와 레트로바이러스(에이즈)가 먼저 물망에 오른다. "두 번째 기준은 인간이 아닌 동물 집단에서 큰 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오르토믹소바이러스와 함께 파라믹소바이러스(헨드라와 니파), 코로나바이러스SARS-CoV가 떠오른다. 버크의 세 번째 기준은 "내재적 진화가능성", 즉 돌연변이와 재조합이 쉽게 일어나 "인간 집단 내에서 신종 질병으로 나타나고, 전 세계적인 유행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이다. 그 예로는 다시 레트로바이러스, 오르토믹소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를 들었다. 그리고 특별히 코로나바이러스를 지목하며 "이들 바이러스 중 일부는 인류 보건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진화 가능성이 높고 동물 집단에서 유행병을 일으키는 능력이입증되어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 P640

다양한 전문가들이 이런 요인들에 대해 경고해 왔으며, 이런 요인들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열거해 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우선 우리는 개체수가 70억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상승세를 멈추고 보합상태로 돌아서기 전에 세계인구는 90억을 가볍게 넘길 것이다. 많은도시에서 우리는 밀집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이 행성에 마지막으로 남은 거대한 숲과 야생 생태계를 침입하여 물리적 구조와 생태학적 공동체를 파괴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콩고 전역을 망가뜨렸다. 아마존도 망가뜨렸다. 보르네오도 망가뜨렸다. 마다가스카르도 망가뜨렸다.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도망가뜨렸다. 이익을 노리고 나무들을 베어 넘어뜨렸으며,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 채 돈을 챙기는데만 급급했다. 숲에서 발견한 야생동물들은 보는 족족 죽여 고기를먹어치웠다. 그 자리에 정착하여 작업장과 주거지와 마을과 채취산업과 새로운 도시들을 세웠다. 그곳에 우리가 길들인 동물들을 데리고들어가 야생동물종을 가축으로 대체해 버렸다. 우리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가축들의 숫자도 늘어야 했기에 거대한 공장식 축산업을 일으켰다.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와 양과 염소는 물론 수많은 대나무쥐와 딸시벳까지 집단적으로 축사와 울타리 속에 가두어 이런 가축 또는 반가축화된 동물들이 외부로부터(축사 위에 거꾸로 매달린 박쥐)병원체에 감염되고, 그런 감염이 그 속에서 널리 퍼지고, 그런 병원체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소나 오리는 물론 우리 자신까지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렇게 대량으로 사육하는 가축들에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중을 불리고 이윤을 얻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도축할 때까지만 건강을 유지시킬 심산으로 예방 용량의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저항성 세균의 진화를 부추겼다. 우리는 아주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가축들을 수출하고 수입한다. 의학 연구를 위해 살아 있는 동물, 특히 영장류를 수출하고 수입한다. 이국적인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야생동물을 수출하고 수입한다. 무임승차한 미생물 승객이 몰래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짐승의 가죽과 사냥이 금지된 동물의 고기와 채취가 금지된 식물들을 수출하고 수입한다. 우리는 가축을 수송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도시와 대륙 사이를 오간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 재채기를 해대는 호텔에서 묵는다. 우리가 들른 식당의 주방장은 우리가 주문한 조개 요리를 만들기전에 호저를 도살한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원숭이 사원을 방문하고, 인도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을 파는 시장을 방문하고, 남미에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방문하고, 뉴멕시코 주에서는 먼지가 뽀얗게이는 고고학적 유적을 방문하고, 네덜란드에서는 젖소 목장을 방문하고, 아프리카 동부에서는 박쥐가 사는 동굴을 방문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경마장을 방문하여 공기를 호흡하고, 동물들에게 먹이를주고, 이곳저곳을 손으로 만지고, 친절한 현지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모기와 진드기들에게물린다. 우리가 배출한 탄소가 기후를 변화시킴에 따라 모기와 진드기가 서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나 엄청난 숫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모험심이 강한 미생물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이 인수공통감염병의 생태학과 진화생물학에서 중요한주제들이다. 생태학적 환경은 종간전파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진화는 종간전파가 전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번지는 과정을 촉진한다. - P643

나는 매일 그 나무를 지나친다. 거의 항상 그 자국이 거기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거의 항상 애벌레들이 엄청난 숫자로 몰려왔다가사라져 버린 일을 기억한다. 한때 모든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했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어쩌면 행운이야말로 결정적인 요소인지모른다. 어쩌면 상황이 중요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냥 운명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동일 것이다. 유전학일 수도 있다. 요즘 나는 나무에생긴 그 자국을 보면서 종종 그렉 드와이어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P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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