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손을 쓰는 작업이었다. 머리를 쓰는 작업은 DRC60과ZR59의 염기 하나하나를 비교하는 것으로 주로 컴퓨터로 수행했다. 이 작업에는 두 가지 염기서열을 기존 HIV-1 M군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계통수 안에 놓고 보다 넓은 범위에서 비교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비교 목적은 진화상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보는 것이다. 바이러스 균주는 서로 얼마나 멀어졌을까? 진화상 변화는 개개의 염기수준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에 의해 축적되는데(다른 경로도 있지만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했듯 에이즈 바이러스 같은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 HIV-1의 평균적인 돌연변이 속도를 아는 것, 또는 많은 균주에서 주의 깊게 측정하는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돌연변이 속도는 바이러스의 ‘분자적 시계‘로 간주된다. 모든 바이러스는 고유한 돌연변이 속도를 갖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는 변화를 측정하는 자신만의 시계를 갖고 있는 셈이다. 두가지 바이러스 균주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안다면 이들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있다. 차이와 분자시계 사이의 함수로 경과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분자생물학자들은 TMRCA(timeto most recent common ancestor,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에 이르는 시간)라는 중요한 파라미터를 계산한다. - P523
마이클 워로비는 거의 같은 시기에 킨샤사 주민에서 얻은 DRC60과 ZR59 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가지 모두 의심할 여지없이 HIV-1 M군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M군이나 군, 또는 침팬ope지 바이러스인 SIV와 혼동될 우려는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M군 내에서 두 가지 서열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얼마나 멀었을까? 게놈의한 부분이 12 퍼센트 정도 달랐다. 그 차이는 얼마나 긴 시간에 해당할까? 워로비의 계산으로는 약 50년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그는 오차범위를 고려하여 DRC60과 ZR59의 가장 최근 공통 조상이 존재했던때를 1908년으로 추정했다. 1908년에 이미 종간전파가 일어났다고?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만큼 이른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 발견은 유명 저널에 실릴 가치가 충분했다. 종간전파가 일어난 지 100년 후인 2008년 무옘베와장-마리 카봉고까지 공동저자로 포함시켜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에서 워로비는 이렇게 썼다.
진화적으로 분화된 시기와 진화상 경과한 시간이 수십 년에 이른다는 우리의 추정은 DRC60과 ZR59 사이의 유전학적 거리가 멀다는사실과 함께 고려할 때 이 바이러스들이 20세기 초반 아프리카에 살던 인구집단 내에서 전파되고 있던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 P524
여기서 우리는 HIV-1 M군의 기원이 된 SIVeepe* 균주가 오늘날까지도 카메룬 남동부에서 서식하는 중앙아프리카침팬지의 몸속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같은 계통에 속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바이러스는국지적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곳을 시작으로 바이러스는생하강(또는 다른 지류들)을 거쳐 콩고 강 남쪽에 이른 후 거기서 다시 킨샤사로 옮겨갔을 것이다. M군의 전 세계적인 유행은 킨샤사에서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국지적으로 전파‘라는 말은 애매하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경로를 통해 그렇게 되었다는 말일까? 그 운명적인 사건들은 어떻게발생하여 진행되었을까?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2000년에 한 자신이다른 세 명의 공동저자와 함께 처음으로 에이즈가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설명한 바 있다. ‘사람의 경우 사냥이나 도살, 또는 기타 활동(오염된 고기를 조리하지 않고 먹는 등) 중에 동물의 혈액과 분비물에 직접 노출된 것이 그런 전파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높다. 사냥꾼 자상 가설을 암시한 것이다. 최근 그녀는 이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침팬지-인간 전파의 가장 가능성 높은 경로는 사냥감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과정에서 감염된 혈액과 체액에 노출되는 것일 것이다. ‘침팬지를 사냥한 후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는 과정에서 사람의 손에 난 작은 상처를 통해 혈액접촉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SIV는 침팬지로부터 인간으로 동물종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전파된 후 새로운 숙주의 몸속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된다. 이런 설명은 아직 구체적인 부분까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이며, 이미 밝혀진 사실들과도 잘 들어맞는다. 1908년경 카메룬 남동부의 숲 속에서 사냥꾼자상 시나리오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가정하면 킬의 데이터는 물론, 마이클 워로비가 제시한 시간 경과도 문제없이 설명된다. 카메룬남동부에서 한 사람이 감염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종간전파가 거기서 일어났다면 유행이 킨샤사에서 시작된 것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한에게 물었다. "그 지역에서 킨샤사까지는 많은 강이 흐릅니다. 우리의 추정, 즉 가설은 유인원이 아니라 사람이 바이러스를 거기까지 이동시켰다는 것입니다. 유인원이 카누를 타고 킨샤사를 방문했을 리는 없죠. 바이러스를 킨샤사까지 운반한 것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누군가 감염된 침팬지를 사로잡아 카메룬 국경 지방에서 먼 길을 거쳐 살아 있는상태로 킨샤사까지 데려갔을 희박한 가능성도 언급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몸을 빌어 그곳까지 갔을 것이다. - P533
최종 목적지는 우에소Ouesso입니다." 우에소는 강 건너 콩고 땅에 있는 인구 28,000명 정도의 항구로 생강 상류 지역의 교역 중심지다. 우리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문가 소장의 사무실을 나온 나는 잠시 복도에 서서 끔찍한 그림들위로 프랑스어로 된 경고문이 적혀 있는 벽보를 들여다보았다. LA DIARRHEA ROUGE TUE! 피섞인 설사를 한다면 치명적입니다! 에볼라 포스터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작은 글씨로 ‘GrandsSinges et VIH/SIDA (대형 유인원과 VIH/SIDA)‘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SIDA는 프랑스어로 에이즈, VIH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머릿글자다. 만화 같지만 전혀 우습지 않은 그림은 밀렵한 원숭이 고기와 la diarrhea rouge 사이의 관계를 냉혹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보고 있노라니 그 기묘함이 새삼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계 도처의 에이즈 교육자료가 하나같이 ‘안전한 성관계! 올바른 콘돔 사용! 주사 바늘 재사용 금지!‘를 외치는데, 이곳의 메시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유인원을 먹지 마시오!" - P547
논문의 괄목할 만한 결론은 킬이 작성했던 초록과 달리 곰베에 사는 SIV 양성 침팬지가 실제로 폐사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 기간 중 사망한 18마리 중 7마리가 SIV 양성이었다. STV 양성인 개체가 전체 집단의 20퍼센트 미만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해당 연령의 정상 폐사율로 보정했을 때 이 결과는 SIV 양성 침팬지가 SIV 음성인 경우보다 폐사 위험이 10~16배 높다는 뜻이다. 무려 10~16배가 높다. 숫자 자체는 적지만 이런 비율은 엄청난 것이다. 감염된 동물은 속절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SIV 양성인 암컷은 출산율이 낮았고, 영아 페폐사율도 높았다. 부검한 세 마리는 모두(욜란다도 포함되었지만 이름이 따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림프구 소실과 함께 말기 에이즈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냈다. 저자들은 조심스럽고도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SIV는 야생 침팬지의 건강, 생식 및 수명에 현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바이러스는 인류와 가장 비슷한 유인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우리의 문제일 뿐 아니라 유인원들의 문제이기도 한것이다. - P596
정리해 보자. 전 세계적 유행병인 에이즈의 기원은 한 가지 우연한사건으로 추적해 갈 수 있다. 그 사건은 한 마리의 침팬지와 한 명의 인간 사이에 일어난 혈액을 통한 상호작용이었다. 그 사건은 카메룬 남동부에서 대략 1908년 경에 일어났다. 그 사건으로 인해 현재 HIV-1M군이라고 알려진 한 가지 바이러스 균주가 계속 증식했다. 이 바이러스는 종간전파를 일으키기 전 침팬지에게 치명적이었을 가능성이높고, 종간전파를 일으킨 후 인간에게는 확실히 치명적이었다. 카메룬 남동부에서 바이러스는 생강과 콩고 강을 따라 내려가 브라자빌과 레오폴드빌에 이르렀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 거점 도시에서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졌다. 어떤 방식으로 퍼졌을까? 일단 레오폴드빌에 도달한 후 바이러스는 생하강 상류와 전혀 다른 복잡한 상황을 맞았던 것 같다. - P597
자크 페펭은 논문을 썼으며, 2011년에는 에이즈의 기원The Origins of AID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현장 경험과 과학적 전문성에 깊은 역사적 연구를 결합시켜 그는 사냥꾼 자상 가설과 전 세계적인 유행병 사이를 연결하는결정적인 인자가 피하주사기였다고 주장한다. 페핑은 쾌락을 목적으로 한 약물 사용과 마약 중독자들이 주사기를 돌려 쓰는 버릇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고귀한 목표, 뜻밖의 결과Noble Goals, Unforeseen Consequitances>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그리고 나중에는 책을 통해 훨씬 더 자세히 얘기한 주제는 1921~1959년 사이에 식민지 보건당국에서 몇몇 열대병을 주사약으로 치료한다는, 즉 좋은 의도로 시행했던 보건 캠페인이었다. 예를 들어 카메룬에서는 수병을 퇴치하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수면병은 체체파리가 옮기는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라는 끈질긴 병원체가 일으킨다. 당시에는 트리파르사미드tryparsamide라는 비소계 약물을 주사하여치료했는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맞아야 했다. 가봉과 프랑스령 콩고에서 시행되었던 수면병 치료 중에는 3년간 36번 주사를 맞는 방법도 있었다. 매독과 매종(스피로헤타에 의해 생기는 열대 피부병-역주)에 대해서도 비슷한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말라리아는 주사 제형 키니네로치료했다. 나병 환자들은 경구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 1년간 매주 두세 번씩 대풍수(大風樹, 인도산 약용 식물-역주) 추출물을 주사로 투여받았다. 벨기에령 콩고에서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약간의 기술만 가르친 후 인젝터 injecteur라는 순회진료팀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수면병 환자들에게 매주 주사를 놓았다. 최신 의학의 경이로운 성과에 열광하던 시절이었다. 주사를 맞아야 병이 치료된다고 믿었다. 모든 사람이 주사를 맞았다! 물론, 일회용 주사기가 나오기 훨씬 전 얘기다. - P598
환자는 너무 많고, 간호 인력이 쓸 수 있는 주사기는 너무 적으므로 사용한 후 매번 가압멸균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사용한 주사기는 우선 물로 씻고, 다시 한 번 알코올과 에테르로 씻은 후 새로운 환자에게 사용한다. 몇 안 되는 간호사들이 많은 환자들을 돌봐야 하고, 의료용품 공굽은 턱없이 달리는 의료기관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한 환자에게 사용했던 주사기를 다른 환자에게 사용할 때 소량의 감염성 혈액이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질병을 전염시키는 데 충분한 요건이 된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을까? 너무나 흔했다. 식민지 시대의 오래된 기록들을 성실하게 조사한 페팽에 따르면 그 숫자는 충격적이다. 1927~1928년 사이에 외젠 자모의 치료팀은 카메룬에서 트리파르사미드를 207,089건, 또 다른 비소계 수면병 치료제인 아톡실 atoxyl을 약1백만 건 주사했다.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에서는 1937년 한 해만도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기본 교육만 받은 인젝터들이 수면병 환자에게만 588,086번의 주사를 시행했다. 다른 질병으로 인한 주사 건수는헤아릴 수조차 없다. 페팽의 계산으로는 수면병에만 390만 건의 주사치료가 시행되었는데, 그중 74퍼센트는 정맥 내 주사였다. 정맥 내 주사는 근육이 아니라 정맥에 직접 약을 투여하므로 혈액 매개성 바이러스를 우발적으로 전파시키기에도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 P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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