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깊은 독자라면 내가 에볼라를 박쥐가 보유숙주인 바이러스 속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분류는확정적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박쥐에서 살아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분리해 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바이러스를 분리해 내는 것이 보유숙주를 밝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므로 아마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그 동안에는 에볼라와 박쥐를 연결하는 증거가 추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너던 타우너의 팀이 에볼라와 매우 밀접한 마르부르크병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 추정은 더욱 강해졌다.  - P458

어떤 인수공통감염 병원체는 처음부터 인간 사이에서 효율적으로전파되는 능력을 지닌 것 같다. 오랜 세월 다른 동물을 숙주로 삼았음에도 우연히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종의 집단 내에서 쉽게 전파될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2002~2003년 사이에 광둥성과 홍콩에서 발생한 SARS-CoV는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나타냈다. 유행 이후SARS-CoV가 어디에, 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헨드라 바이러스는 그런 능력이 없다. 말들 사이에서는 쉽게 전파되지만 인간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 다음에 돌연변이나 진화에 의해 그런 능력을 획득하는 병원체도 있다. 지난 15년간 유행병 전문가들 사이에 조류독감(균주명을따서 H5N1으로 부르기도 한다)에 관한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많은 사망자를 낸 적은 없지만 매우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돼지독감도 인간 집단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면서(가장 최근에는 2009년이었다) 때로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유행을 일으키고, 때로는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2009년처럼), 조류독감의 잠재적인 심각성은차원이 약간 다르다. 독감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계속 H5N1 독감을주시하는 이유는 (1) 비교적 환자수가 적은 경우에도 인간의 몸속에서매우 심한 독성을 일으켜 사망률이 높지만, (2) 아직까지 인간에서 인간으로 쉽게 전파되지 않기 때문이다. 걸리면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높지만, 감염된 닭을 자기 손으로 도살하거나 하지 않는 한 걸릴 가능성이 매우 낮다. 자기가 먹을 닭을 손수 잡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전세계의 보건 관계자들이 우리가 접하는 닭, 즉 죽인 뒤 분해하여 비닐에 싸거나 다른 방법으로 가공한 닭고기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나않을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한다. 그러나 H5N1이 우연히 딱 맞는 방식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재구성되어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파되기 쉬운 형태로 적응한다면 우리는 1918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는 유행병을 보게 될 것이다. - P463

또 한 가지 시작점은 ‘환자 제로‘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출신 젊은비행기 승무원 게탕 두가Gaétan Dugas 였다. 에이즈의 초기 전개 과정에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두가는 흔히 ‘아프리카에서 바이러스를 들여와 서구 남성 동성애자 집단에 처음 퍼뜨린‘ 사람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걸쳐 매우 왕성하고, 비난 받아 마땅할 정도로 부주의한 ‘전파자‘ 역할을 수행한 것 같다. 항공기 승무원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그는 북미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상대를 바꿔 쾌락에 탐닉했다.  - P477

당시 바이러스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몽타니에가 바이러스Virus)라는 제목의 회고록에 적었듯이 그럴 가능성을 시사하는 세 가지 증거가 있었다. 첫째, 성적으로접촉한 동성애자들 사이의 발생률은 에이즈가 감염병임을 시사했다.
둘째, 정맥주사용 마약 사용자들의 발생률은 혈액 매개성 감염을 시사했다. 셋째, 혈우병 환자에서 발생한 증례들은 이 혈액 매개성 병원체가 응고인자 등 혈액제제 제조과정에서 검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했다. 따라서 에이즈의 원인은 극히 미세하고,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병원체일 것이었다. 몽타니에는 이렇게 썼다. ‘기존에 알려진 세균이나 곰팡이, 또는 원충이 에이즈를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 이런 병원체들은 혈우병 환자에게 필요한 혈액제제 제조과정에서 필터에 의해모두 걸러지기 때문이다. 이는 에이즈의 병원체가 아주 작다는 뜻이며, 결국 바이러스일 수밖에 없었다.‘ - P483

HIV-2는 HIV-1보다 전파력이나 독성이 약하다. 이렇게 결정적인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아직 분자 수준에서 밝혀지지 않은 채 게놈 속에 숨어 있지만 생태학적, 의학적 결과는 분명하고 엄혹하다. HIV-2는 주로 세네갈과 기니비사우 (식민시대에는 포르투갈 기니라고 불렸다) 등 서아프리카 국가들과 포르투갈 본토 및 인도 서남부 등 예전 포르투갈 제국 내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연결된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HIV-2 에 감염된 사람은 혈액 내 바이러스 수치가 낮으며, 성적 접촉시에도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일이 적고, 면역결핍 또한 오래 시간이 지난 후 나타나는 데다 덜 심한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이 아예 에이즈로 진행하지 않는 것 같다. 산모가 감염되더라도 아기에게 수직감염될 가능성이 더 낮다. 물론 고약하지만 에이즈 바이러스라는 이름만큼 고약하지는 않은 것이다. HIV-1은 전혀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감염되어 있다고 할 때는 HIV-1을 가리킨다. HIV-1은 세계적인 재앙이다.  - P499

M군 GroupM은 가장 흔하고 독성이 강하다. 영문자 M은 ‘주요 main‘에서 따온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대부분의 에이즈바이러스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HIV-1 M군이 없다면 전 세계적인 유행과 수백만에이르는 사망자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그룹은 O군GroupO)이다. 여기서는 ‘역외자outler‘에서 따왔다. 여기 속하는 바이러스들은 종류가 몇 되지 않고, 기원을 추적해보면 하나같이 유행이 집중된 지역을벗어난 곳에서 발견된다. 이들의 기원은 가봉, 적도 기니, 카메룬 등모두 중앙아프리카 서쪽 지역이다. 1998년 세 번째 바이러스 군이 발견되었을 때는 N으로 표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었다. ‘M군도 아니고 0군도 아니다 non-Minon-o‘라는 뜻이면서 알파벳 순서도 대충맞기 때문이다. (몇년뒤 발견된 네 번째 바이러스 군은 군으로 명명되었다.) N군은 극히 드물어 명명 당시까지 단 두 명의 카메룬인에서만 발견되었다. N군과 O군이 드물기 때문에 M군이 엄청나게 두드러지기도 한다. M군은 어디에나 있다. 왜 이 계통은 널리 분포하고 치명적인데 반해 나머지 두 가지(또는 세 가지) 계통은 그렇지 않은가? - P503

과학자들은 이들 12개 바이러스 군이 각자 따로따로 동물종 간의경계를 뛰어넘어 인간에게 전파되었다고 생각한다. 종간전파가 12번 일어났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류를 감염시킨 것은 한 번이 아니다. 그런 일은 최소한 12번 일어났다. 우리가 아는 것만 12 번이고 어쩌면 아주 먼 과거에 훨씬 자주 일어났을 것이다. 이들의 종간전파는 매우 드문 사건이 결코 아니다. 어느날 무한공간을 날아온 혜성이 지구를 강타하여 공룡들을 멸종시켰듯, 호모 사피엔스란 종이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불운에 맞닥뜨려 참담한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간의 혈액 속에 침투한 것은 작지만, 어떤 경향의 일부다. 우리와 아프리카 영장류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특성상 그런 일은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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