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추아의 연구 덕분에 타당성 있는종간전파 시나리오가 마련된 것이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박쥐에서 돼지로 전파되었을까? 필요한 조건은 양돈장 근처에 잘 익은 과일을 잔뜩 매단 망고나무나 물사과나무가 있는 것뿐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박쥐가 물사과를 먹다가 씹다 만 조각을 땅에 뱉는다(박쥐들은 곧잘 이런 행동을 한다), 바이러스가 우글우글한 과일 조각이 돼지들 사이에 떨어진다. 한 마리가 다가와 이 맛난 과일을 게걸스럽게 먹을 때 상당한 양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간다. 바이러스는 돼지의 몸속에서복제를 일으키고 다른 돼지에게 전파된다. 머지않아 돼지떼 전체가 감염되고, 돌보던 인간이 쓰러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시나리오가 아니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농업은 매우 다변화되어 있다. 축산과 함께 과일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많기 때문에 양돈장 주변에 망고나 물사과는 물론 다른 과일나무가 늘어서 있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수 있다. 니파 바이러스는 달콤한 과일 조각의 형태로 하늘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어떤 돼지가 마다하겠는가? - P406

 루비의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인도날여우박쥐 중 일부가 니파 항체 양성이라는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돼지를 통하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박쥐에서 사람으로 종간전파를 일으켰을까? 여기서 대추야자수액이 등장한다. 인도날여우박쥐도 이 수액을 무척 좋아한다. 나무 주인들은 밤에 대추야자 나무에서 박쥐 소리가 들린다고 불평을 해댔다. 탕가일에서 연구를 마친 후 루비의 팀은 이렇게 보고했다.

나무 주인들은 과일박쥐가 나무에 상처를 낸 자리, 또는 그 밑에 받쳐놓은 항아리에서 직접 야자나무 수액을 먹는 일이 잦다고 매우 성가시게 생각했다. 박쥐의 배설물이 항아리 주변에 떨어져 있거나 수액 위에 떠 있는 일도 흔히 있었다. 항아리 속에 아예 죽은 박쥐가 떠 있는경우도 가끔 있었다. - P414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유행이 발생한 방글라데시 서부는 니파 토착지역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이 대추야자나무의 토착 서식지이기때문이다. 박쥐는 그보다 훨씬 폭넓게 분포하지만 서부는 특히 사탕대추야자가 잘 자라고 사람들이 그 수액을 즐기는 지역이다. 수액 채취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겨울의 시작으로 여기는 첫 번째 추운 밤,
즉 12월 중순에 시작된다. 수액을 채취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는 가치라gachis 라고 부른다. 방글라데시 말로 가츠gach는 나무라는 뜻이므로 결국 ‘나무 사람‘이라는 뜻이다. 대추야자나무의 소유주는 다른 사람들이다. 보통 채취한 수액의 절반이 소유주의 몫이다. 가치라는 빈곤충 농업 노동자들로 보통 한철 부업 삼아 이 일을 한다. 수액을 채취하려면 먼저 나무에 올라간 후 꼭대기 근처에서 나무 껍질을 V자 모양으로 크게 벗겨낸다. V자의 맨 아래에 대나무로 만든 대롱을 꽂고, 대롱 끝에 작은 옹기 항아리를 매달아 둔다. 밤새 대롱을 통해 흘러내린 수액이 항아리 속에 고이는 것이다. 가치라는 해뜨기 직전에 다시 나무로 올라가 신선한 수액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갖고 내려온다. 나무한 그루에서 얻는 수액을 10시 전에 판다면 보통 10타카(taka, 방글라데시의 화폐단위, 1타카는 약 30원-역주)를 번다. 그는 많은 나무에서 채취한 수액들을 커다란 알루미늄 용기에 붓는다. 이때 수액과 박쥐똥, 박쥐 오줌, 그리고 바이러스가 한데 섞인다. 이제 그는 신이 나서 수액을 팔러 나간다. 불순물이 섞인다고 해도 눈하나 꿈쩍 않는 가치라들이 많다. 누군가는 루비의 팀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들이 나무에서 수액을 먹는다고요? 아무 문제없어요. 새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어요. 박쥐나 다른 동물이 수액을 먹어도 쫓아내지 않으면 신이 은총을 베풀어 주신답니다." 그는 신의 은총을 얻고 고객들은 니파를 들이마신다. 물론 신경을 쓰는 가치라들도 있다. 죽은 벌이나 새털, 박쥐 똥이 섞여 거품이 일고 찐득거리는 수액보다 붉고 투명한 수액이 더 좋은 값을 받기 때문이다. - P415

RNA바이러스는 돌연변이율이 높고 복제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어디든 잘 적응하며, 모든 종간전파는 어디엔가 적응하여 한몫 잡을 새로운 기회라는 점을 그는 상기시켰다. 우리는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동물바이러스가 종간전파를 일으켜인간의 몸속에 뛰어드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이들 바이러스 중많은 수가 아예 질병을 일으키지 않거나, 새로운 질병을 일으키더라도보건의료가 거의 보급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이미 알려진 질병으로 오인된다. "요점은 바이러스에게 종간전파를 일으킬 기회가 많이 주어질수록, 새로운 면역계에 대항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일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돌연변이는 마구잡이로 일어나지만 놀랄 만큼 빈도가높고,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뉴클레오티드를 새롭게 조합시킨다.
"그러다 보면 조만간 새로운 숙주에게 적응하는 데 딱 맞는 조합을 발견하는 바이러스가 나오게 됩니다."
‘기회‘에 관한 이런 지적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라기보다 훨씬 미묘한 구석이 있다. 전에도 나는 몇몇 질병과학자들에게서 같은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전체적인 상황이무작위로 벌어진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우리는 신종 질병이라는 현상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호모 사피엔스를 공격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열대우림의 복수‘라는 식으로 별 생각없이 수다를 떠는 것은 그런 낭만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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