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나 작기에? 평균적인 바이러스는 평균적인 세균의 약1/10 정도 크기다. 과학의 표준측정단위인 미터법으로 표기한다면 대란 구형에 가까운 바이러스의 지름은 약 28나노미터(1미터의 280억분의 1)에서 300나노미터 정도다. 하지만 모든 바이러스가 구형은 아니다. 원통형도 있고, 실 모양도 있으며, 불쾌한 초현대식 빌딩이나 달착륙선처럼 생긴 것도 있다. 형태가 어떻든 내부 공간은 엄청나게좁다. 공간이 작기 때문에 아무리 잘 접어넣는다고 해도 게놈의 크기는 제한될 수밖에 없어 작은 바이러스는 3,000개, 가장 큰 놈이라야겨우 375,000개의 뉴클레오티드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생쥐의 게높은 30억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진다. 유전자가 하는 일은 바로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다. 한 개의 아미노산을 만드는 데 3개의 뉴클레오티드가 필요하며, 평균 250개의 아미노산이 모여 한 개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물론 훨씬 큰 단백질도 있다). 세포나 바이러스 내부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이차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3,000개의부호는 물론, 심지어 13,000개 (독감 바이러스) 30,000개(사스 바이러스)의 부호로 된 게놈이라고 해도 매우 개략적인 설계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겨우 8~10개의 단백질을 부호화하는 작은 게놈을 갖고도바이러스는 교활하고 효과적으로 행동한다. - P335

바이러스 입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4가지 과제는 어떻게 다른 숙주로 옮겨갈 것인가, 어떻게 그 숙주의 몸속에서 세포를 뚫고 들어갈 것인가, 어떻게 그 세포의 내부 기관과 자원을 징발하여 자신을 대규모로 복제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 세포와 숙주를 탈출할 것인가이다. 바이러스의 구조와 유전학적 능력은 이런 과제를 아주 경제적인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P335

이 유전물질을 감싸는 단백질 껍질을 캡시드capsid라고 한다. 캡시드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 내부의 유전물질을 보호하고, 바이러스가 세포 속으로 침입하도록 돕는 것이다. 세포 밖에 존재하는 각각의 바이러스 단위체, 즉 한 개의 입자를 비리온virion 이라고 한다. 되도록 전문용어는 쓰지 않겠지만 비리온이라는 말은 바이러스 전체와 한 개의 바이러스, 즉 바이러스라는 생물과 바이러스 입자 한 개를 구분하여 혼란을 피하고자 할 때유용하다. 또한 캡시드는 바이러스의 외부 형태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에볼라나 마르부르크병의 비리온은 길다란 실 모양이므로 필로바이러스 filovirus * 라고 한다. 구형이나 계란형, 나선형, 또는 이십면체**모양인 바이러스 입자도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공 모양이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총알 모양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헨드라 바이러스를섞어서 접시 위에 올려 놓는다면 연한 케이퍼 소스를 얹은 스파게티처럼 보일 것이다.
또한 많은 바이러스가 단백질뿐 아니라 숙주세포에서 빼앗은 지방분자, 심지어 복제를 끝내고 탈출하면서 숙주세포의 벽에서 뜯어낸 성분들로 또 하나의 층을 만들어 자신을 둘러싼다. 이 구조를 외피라고 한다. - P336

DNA와 RNA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 사이에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생겨난다. 바로 돌연변이율이다. DNA는 두 가닥으로 이루어진 분자다. 그 유명한 이중나선이다. 두 가닥이 뉴클레오티드 염기쌍 사이의 특이적 관계(아데닌은 티민과 결합하고, 시토신은 구아닌과만 결합한다)에 의해 꼭 들어맞게 되어 있기 때문에자가복제 시 염기배열에 실수가 있어도 대부분 복구된다. 복구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단일 가닥으로부터 새로운 DNA가 생성되는 과정을촉매하는 DNA 중합효소다. 예를 들어, 아데닌이 잘못된 장소에 놓여구아닌과 연결되는 경우(아이쿠, 파트너를 잘못 찾았네!), 중합효소는실수를 인식하고 잘못된 염기쌍으로 돌아가 불일치를 교정한 후 하던일을 계속한다. 따라서 D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 발생률이 비교적낮다. 하지만 한 가닥의 분자로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RNA 바이러스에는 이런 짝짓기 시스템이나, 중합효소에 의한 검토 및 교정 과정이없기 때문에 돌연변이율이 때로는 수천 배 더 높다. 흔하지는 않지만 DNA 바이러스 중에도 유전정보를 한 가닥의 DNA에 저장하여 돌연변이율이 높은 것들이 있다. 또한 두 가닥으로 된 RNA를 지닌 바이러스도 있다.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므로 소수의 예외는 무시하고 가장 중요한 사실만 한 번 더 반복해보자. RNA 바이러스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 P338

돌연변이는 곧 새로운 유전적 변이를 의미한다. 변이는 자연선택이작동하는 기본 재료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결정적인 기능이상을 일으키므로 유해하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개체는 진화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다. 그러나 때때로 돌연변이가 오히려 유용하고, 적응에도움이 되는 우연한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날수록 이런 행운이 찾아올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따라서 RNA 바이러스는 아마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생물보다 더 빨리 진화할 것이다. 이들이 그토록 빨리 변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그토록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339

왜 어떤 바이러스 질병은 크게 유행하고, 어떤 질병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며, 또 어떤 질병은 간헐적으로 유행하거나 큰 피해를 일으키지않고 그냥 지나갈까? 바이러스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전파력과 독성이다. 이 두 가지는 속도와 질량처럼 바이러스 감염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파라미터다. 몇 가지 다른 인자들과 함께 모든 유행병의 최종 결과를 확정짓는다. 두 가지 모두 불변의 상수는아니다. 매번 다르며 상대적이다. 이 요인들은 바이러스와 숙주, 그리고 더 넓은 세상 사이의 연관성을 반영한다. 미생물뿐만 아니라 감염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측정하는 것이다. 전파력과 독성, 그것은 바이러스 생태학에 있어 음양의 이치와 같다. - P365

성공적인 기생체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일까? 절대로 숙주를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의사학자 이 개념는의 기원이 파스퇴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파스퇴르의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기생체는 ‘숙주와 조화롭게 사는‘ 것이므로, 잠복성 감염이야말로 ‘이상적인 기생 형태‘로 간주되었다. 한스 진서 역시 <쥐와 이와 역사>에서 똑같은 개념을 주장하며 특정한 기생체와 숙주가 장기적으로 상호 연관되는 경우, 진화적 적응에 의해 침입자와침입당한 자 사이에 보다 완벽한 상호내성‘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고설명한다. 맥팔레인 버넷도 이런 관점에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생물이 숙주-기생체 관계를 맺는 경우, 기생동물종의 생존은 숙주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증식하는 데는 충분하지만 숙주를 죽이는 데는 충분하지 않은 정도로 숙주의 자원을 이용하는 균형상태를 달성할 때 가장 안전하게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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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성공적인 바이러스 중에도숙주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들이 있다. 사망률이 99퍼센트에 이를뿐더러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광견병 바이러스가 그렇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그렇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 죽이느냐이다. - P371

 수학적으로 단순해지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다루는 데 더 간단하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구 200,000명인 도시에 홍역이 돈다고 해보자. 유행이 진행되는 동안 감염에 취약한 사람과 현재 감염된 사람, 감염되었다 회복된 사람의 숫자를 모두 합하면 항상 200,000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계산은 출생자 수와 사망자 수가 균형을 이루어 인구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그런 안정성이 질병의유행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는 가정하에서만 성립한다. 그때까지 역학자를 비롯한 의료인들은 물론 심지어 수학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이런 접근법을 당연하게 여겼다.
앤더슨과 메이가 보기에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정적이었다. 그들은 집단의 크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복잡한 인과관계에라 끊임없이 변한다고 보는 생태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집단 크기를역동적인 변수로 취급했다. 집단의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는 인위적인 가정을 버리고, 예컨대 집단 내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출생률은 떨어지며, 사회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거나(병원이 너무 붐빈다든지), 다른이유로 인한 사망률도 상승하는 등의 요인으로 질병 유행 자체에 의해 집단의 크기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로 든 세 가지요인은 한꺼번에 작용할 수도 있고, 다른 요인이 더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P382

 앤더슨과 메이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주된결론은 ‘균형이 잘 잡힌‘ 숙주-병원체 관계란 반드시 병원체가 숙주에게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반대로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달라진다. 그들은 모든 것이 전파와 독성 사이의 구체적인 조건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은 생태학과 진화에 달려 있다. - P385

 알려진 바이러스들을 밝은 빛깔의 피자처럼 그려 놓은 바이러스 생태계 포스터를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피자의 반 이상이 RNA 바이러스였던것이다. 하지만 에디는 그저 흔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놈들은 엄청나게 빨리 진화한다. 변화무쌍하다. 적응이 빠르다.
그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돌연변이율이 높을 뿐 아니라 개체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두 가지 조건을 합치면 상황에 적응하여 변화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RNA 바이러스는복제 속도가 매우 빨라 숙주의 몸속에서 삽시간에 숫자가 불어난다(높은 역가). 달리 말하면 급성 감염을 일으켜 단기간 동안 증상이 아주 심했다가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사라지거나 숙주를 죽이거나 둘중에 하나라는 뜻이다. 에디는 ‘확 타올랐다가 갑자기 사그라드는 놈들‘이라고 했다. 또한 급성 감염 시 재채기, 기침, 구토, 출혈, 설사 등을 통해 숙주로부터 많은 바이러스가 쏟아져나와 다른 희생자에게 전파되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은 숙주의 면역계를 따돌리고 필요한 것을 탈취한 후 신체의 방어 시스템에 의해 퇴치되기 전까지 계속 증식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특별한 예외다.) 이렇게 빠른 복제와높은 돌연변이율로 인해 매우 다양한 유전학적 변이가 발생한다. 이런변이는 RNA 바이러스가 또 다른 숙주의 몸에 들어갔을 때, 심지어 전혀 다른 종의 숙주에게 들어갔을 때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움이 된다. 환경이 어떻든 말이다. - P388

대부분의 DNA 바이러스는 전혀 반대다. 돌연변이율이 낮고 집단의 크기도 작은 경우가 많다. 에디에 따르면 이들은 자기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끈질긴 방식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끈질긴 잠복, 그들은 몸을 웅크린 채 기다린다. 면역계를 따돌리려고 하기보다 찾지 못하게 몸을 숨긴다. 활동을 중단하고 특정한 세포 속에 계속 머무르며때로는 몇 년씩 거의 증식하지도 않는다. 그가 전형적인 DNA 바이러스의 예로 든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이놈들은 수두의 형태로 인간 감염을 일으키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대상포진이라는 형태로 재발한다. 에디의 말에 따르면 DNA 바이러스의 단점은 새로운 동물종의 몸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무 융통성이 없다. 외골수다. 과거에 통했던 방법만 고집한다. - P388

그렇다면 왜 RNA 바이러스의 게놈은 이렇게 작을까? 자가복제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생기기 때문에, 복제하는 데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오류가 축적되어 결국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디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했다. RNA 바이러스가 게놈이 작을 수밖에 없는 것은 돌연변이율이 너무 높기 때문인데,
돌연변이율이 너무 높은 이유는 게놈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딜레마에는 ‘아이젠Eigen의 역설‘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어 있다. 만프레드 아이젠Mantred Eigen은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의 화학자로거대분자의 진화를 연구해 왔다. RNA 바이러스가 이 역설을 극복하는 전략은 무수한 오류와 단순성, 불안정성을 무릅쓰고 엄청나게 많은 바리온을 만들어 초기에 다른 숙주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자주 반복하는 것이다. - P389

"DNA 바이러스는 훨씬 큰 게놈을 만들 수 있습니다." RNA 바이러스와 달리 아이겐의 역설 따위는 없다. 심지어 숙주의 유전자를 끌어다 자신의 유전자와 통합시켜 숙주의 면역계를 속이기도 한다. 이들은숙주의 몸속에 훨씬 오랫동안 머물며 성적접촉이나 수직감염 등 보다느린 방식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 "RNA 바이러스는 그렇게 못하죠."
처한 상황과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돌연변이율을낮출 수 없다. 게놈을 키울 수도 없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거죠."
당신이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처한 바이러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장기적으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고, 시간도 없지만 잃어버릴 것도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능력은 엄청나게 높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가장 관심있는 주제가 튀어나왔다. 에디가 이렇게 말했던것이다. "이놈들은 종간장벽을 엄청나게 자주 뛰어넘지요." - P390

어쩌면 필드는 당장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잠재적 인수공통감염병이 가축 사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폭발할 때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세계 곳곳의 수많은 대규모 농장에서 얼마나 많은 병원체가 그런 식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을까? 현대식 공장형 축산을 신봉하는 수많은 농장에서얼마나 많은 RNA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을까? 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자가복제를 일으키고, 끊임없이 돌연변이가일어나며, 개체수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집단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렇게 엄청난 숫자를 고려할 때 어떤 돌연변이가 종간전파로 이어질확률은 얼마나 될까?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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