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코트디부아르(또는 다른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낮은 독성을 나타내는 데 진화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복잡한 문제다. 단순히 치사율만 비교해서는 결론 내릴 수 없다. 치사율 자체는 진화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인 바이러스의 증식력이나 장기 생존력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인체는 에볼라의 주 서식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에볼라의 주 서식지는 보유숙주다. 다른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에볼라도 보유숙주 내에서 평화롭게 살면서 꾸준히 증식하지만, 지나치게 숫자를 불려 숙주에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 방향으로 적응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종간장벽을 넘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환경과 조건들을 맞아 치명적인 결과를 빚는 것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삶과 모험에서 인간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보유숙주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종말숙주dead-end host 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그 의미는 이렇다. 유행이 통제되어 막바지에 이르면 바이러스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 물론 그 바이러스가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종간전파라는 도박에 모든 것을 걸고 인간의 몸속으로 뛰어든 바이러스의 혈통이 그렇다는 것이다. 게임은 끝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들의 혈통은 진화적 패배자다. 인간 집단에서 토착병이 되어 계속 살아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거대한 유행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에볼라가 딱이런 경우다. - P103
2007년 우간다에서 발견된 에볼라-분디부교를 끝으로 현재 알려진 에볼라의 분류체계와 분포지역이 대략 정해졌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네 종류가 있는데 중앙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한다. 현재까지 수단, 가봉, 우간다, 코트디부아르, 콩고 콩고민주공화국등 6개국에서 보유숙주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되어 질병을 일으켰다(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릴라와 침팬지의 죽음과 함께). 다섯 번째 바이러스는 필리핀 토착종으로 생각되는데 감염된 마카크원숭이를 통해수차례 미국에 유입되었다. 하지만 에볼라가 아프리카 적도지방에서기원했다면 어떻게 필리핀까지 건너갔을까?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 사이를 건너뛰었을까? 수단 서남부에서 마닐라까지는 직선 거리로 1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철새도 이 정도 거리를 쉬지 않고 날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에볼라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분포하는 것일까? 인도나 태국, 베트남 등지를 뒤져봐야 할까? 아니면 스위스나 요하네스버그에 간 것과 마찬가지로 비행기에 실려 필리핀까지 갔을까? 이런 모든 의문을 생물지리학(생물종이 어디 사는지 연구하는 학문)과 계통발생학(각 계통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의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해 과학이 이해하는 바는 온통 깜깜한 밤에 아주 작은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P108
입자학파는 에볼라 자이르가 중앙아프리카의 숲 속에서 비교적 오래 전부터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던 바이러스이며, 각각의 유행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예를든다면 이렇다. 누군가 감염된 침팬지의 사체를 먹는다. 그 침팬지가 감염된 이유는 그 전에 보유숙주가 입을 댔던 과일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발생한 인간 유행은 결국 국지적이고 우연한 사건에의해 생긴 것이므로 다른 사건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일종의 ‘입자‘라고본다. 에릭 르로이는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저는 이 바이러스가 보유숙주의 몸속에서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때때로 보유숙주에서 다른 동물로 전파되는 거죠." 파동가설은 에볼라-자이르가 중앙아프리카에 퍼진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상격인 어떤 바이러스로부터 비교적 최근에 갈라져 나온 새로운 바이러스로, 어쩌면 얌부쿠 지역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최근에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 유행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지적인 유행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파동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보유숙주들을 감염시키면서 서식 범위를 넓히고있다. 이런 관점에서 각각의 유행은 훨씬 큰 차원에서 벌어지은 일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다. 즉, 거대한 파동이 어떤 지역에 도달했을 때 국지적으로 일어나은 사건에 불과하다. 파동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로는 미국의 생태학자인 피터 월쉬Peter Walsh가 있다. - P148
"한 마리도 남김없이 2003년 유행 때 죽었지요. "사실 죽었다기보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와 다른 추적자들은 고릴라 무리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가다 여섯 마리의 사체를 발견했다.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파리떼가 새카맣게 내려앉은 사체 중에 카산드라도 있었을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그의‘ 고릴라 가족들을 모두 잃었고, 몇 명의 인간 가족도 떠나보내야 했다. 프로스퍼는 오래도록 그 책을 들고 서서 이름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인수공통감염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주의 깊은 관찰과 모델 연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아는 것을 정서적으로 이해했다. 인간과 고릴라, 말과 다이커 영양과 돼지, 원숭이와 침팬지와 박쥐와 바이러스…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 P156
역학자들은 홍역은 물론 다른 병원체로 인한 감염병에도 숙주 개체수의 최소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개체수가 그 임계점 아래로 떨어지면 그 지역에서 계속 감염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임계집단크기 critical community size, CCS는 질병동력학에서 중요한 파라미터다. 홍역의 임계집단크기는 25~4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런 범위는 바이러스의 전파 효율, 바이러스의 독성(치사율로 측정), 노출된 후 면역이 평생 유지되는지 등 질병의 고유한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25만 명 미만의 고립된 집단에서는 때때로 홍역 유행이 발생하더라도 비교적 단기간 내에 바이러스가 저절로 없어져 버린다. 왜 그럴까? 취약한 숙주들을 감염시킬 기회가 금방 소진되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에서는 성인은 물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어린이도거의 모두 이전에 홍역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면역을 가지고 있다. 매년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만으로는 바이러스가 계속 전파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인구수가 40만을 넘으면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만으로 취약한 숙주가 계속 공급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이어나갈 수 있다. 홍역에 관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 집단 내 또는 근처에 사는 동물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면 임계집단크기라는 개념은 중요성을 잃고 만다. 인간 집단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바이러스는 항상 다른 서식처를 찾아 집단 내, 또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홍역 바이러스는 인간만 감염시키지만 매우 유사한 다른 바이러스들이 동물을 감염시키기 때문이다. 홍역 바이러스가 속한 모빌리바이러스 속에는 개홍역과 역 바이러스가 들어간다. - P162
말라리아는 매개체 감염병이다. 곤충에 의해 한 가지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전염되는 병이라는 뜻이다. 매개체는 숙주가 아니다. - P169
모기가 사람을 물었을 때 피부를 뚫고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종충種蟲, sporozoite 이라는 형태로 암수 구별이 없는 무성세대에 속한다. 종충은 인간의 간으로 가서 역시암수 구별이 없는 낭충娘蟲merozoite 으로 변한다. 간을 빠져나온 후에는 적혈구를 침투한 후 그 속에서 분열하여 영양체營養體, trophozoite 가된다. 영양체는 적혈구 내부를 갉아먹으며 점점 성장하여 분열체分裂體) schizont로 변한다. 분열체는 적혈구를 찢고 쏟아져나와 다시 낭충이되어 혈액 속에서 증식하는 데 이때 특징적인 발열이 일어난다. 이렇게 적혈구를 감염시킨 후 혈액 속으로 쏟아져 나오는 일이 반복되다 나중에는 암수로 분화하여 유성세대가 시작되는데, 이때의 원충을 생식모세포生殖母細胞, gametocyte 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 모기가 다시 피를빨면 원충은 모기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생식세포는 모기의 장 속에서 유성생식을 거쳐 운동접합체 運動接合體cokinete가 되며 이들은 장벽에 달라붙어 종충으로 가득 찬 일종의 알주머니로 변한다. 종층들은 때가 되면 알주머니를 찢고 나와 모기의 침샘으로 가서 모기가 다른 숙주의 피를 빨 때까지 기다린다. 지금까지 요약한 말라리아 원충의 생활사를 한 번 읽고 이해했다면 생물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연속적으로 정교하게 형태를 바꿔가며 순차적인 감염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오랜 적응의 결과로 적어도 모기와 숙주 입장에서는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 이렇게 정교하게 구조와 전략과 변형이 일어나는 모습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강력한 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P170
물론 모든 것은 그 기원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 자체가 비교적 새로 출현한 동물종이므로 우리가 앓는 가장 오래된 감염병이라도 다른 동물, 즉 훨씬 오래된 숙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논리적이다(진화에 의해 약간 변형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인수공통감염병과 여기 속하지 않는 질병을 구분하는 일 또한 다분히 작위적이다. 그 구분에는 시간적 요소가 중요하다.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인수공통감염 병원체(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겪는 감염병의 약 60퍼센드)란 현재 반복적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서 종간전파를 일으키는 병원체이며, 여기 속하지 않는 감염(천연두, 콜레라, 홍역, 소아마비 등 나머지 40퍼센트)은 과거 언젠가 우리 조상들에게 완전히 넘어온 병원체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가 앓는 모든 병이 궁극적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되겠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은 우리와 다른 동물숙주들 사이에 장구한 세월에 걸쳐 끈질기게 이어지는 연관관계를 나타내는 엄연한 증거다. - P172
열대열원충이발견된 보노보들은 뚜렷한 증상이 없었으며 혈액 중 원충 숫자도 낮은 편으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기생숙주 관계였다는 설명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데이터를 근거로 한 이런 기술적 결과에 대해 크리예프 연구팀은 한 가지 가설과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가설 - 보노보의 열대열원충이 인간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면 이원충들은 보노보와 인간 사이를 오갈 수 있을 것이다. 즉, 열대형 말라리아는 넓은 의미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더라도 인수공통감염병일 가능성이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숲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보노보의 혈액에서 유래한 열대열원충에 일상적으로 감염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보노보 또한 인간으로부터 감염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경고 - 이것이 사실이라면 말라리아를 근절시킨다는 거대한 꿈은훨씬 더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크리예프 연구팀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은 결국 보노보를 최후의 한 마리까지 죽이거나 완치시키지 않는 한 절대로 말라리아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뜻이 된다. - P186
웨스턴 고릴라는 말라리아 원충 감염률이 매우 높으며(약 37퍼센트가 감염되어 있다), 고릴라에서 분리된 원충의 일부는 열대열원충과 거의 동일했다. 그들은 확신에 차 이렇게 썼다. ‘이런 소견은 인간의 열대열원충이 침팬지나 보노보나 인류의 원시적 기원이었던 존재가 아니라 고릴라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열대열원충에서 나타나는 유전학적 범위 전체가 ‘고릴라 열대열원충 계통에 속하는 단일 계통monophyletic lineage을 구성한다‘고 덧붙였다. 쉬운 말로 하면 인간의 원충은 고릴라의 원충이라는 큰 가지에 속한 잔가지이며, 이 사실은 인간의 원충이 딱 한 번의 종간전파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뜻이다. 즉, 한 마리의모기가 한 마리의 감염된 고릴라의 피를 빤 후, 매개체가 되어 한 사람의 인간을 물어 감염시켰다는 말이다. 먼 옛날 한 마리의 모기가 한명의 사람을 물었던 사소한 사건에 의해 새로운 종의 몸속으로 들어간 원충이 현재 연간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 P177
전염병은 언젠가는 수그러든다. 그런데 왜 수그러드는 것일까? 커맥과 맥켄드릭의 말을 들어보자.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전염병의 유행이 끝나는 것이더 이상 취약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 중에 취약한 사람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염력, 회복및 사망률 등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두 번째 가능성을 지지했다. 즉, 질병의 유행은 감염력, 사망률, 회복(면역 획득)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에 의해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업적으로 네 번째 요인, 즉 취약한 사람의 숫자에어떤 ‘문턱값 밀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문턱값 밀도란 특정 감염률, 회복률 및 사망률이라는 조건하에서 유행병의 발생이 가능해지는 취약한 사람들의 밀집된 정도를 뜻한다. 결국 인구밀도, 감염률, 사망률, 회복률 등 네 가지 요인이 열과 불쏘시개와 불꽃과 연료처럼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것이다. 어떤 결정적인 조화가 이루어질 때, 즉 요소들이 가장 알맞은정도로 만나면 불이 붙는다. 유행병이 시작되는 것이다. 커맥과 맥켄드릭의 공식은 불이 점화되고, 계속 타오르다가, 마침내 꺼지는 조건들을 설명한 것이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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