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게도
아픔이었어

"왜 나 죽이려 그랬어? 들판에서…"
완이 그날 일을 추궁하고 있다.
"들판은 무슨... 지, 지랄 너 미쳤냐? 별 그지 같은...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해대고."
살다 보면 늪에 빠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세상에 버림받고 배신당해 외로움에 치를 떨며 늪의 바닥까지 가라앉는 순간, 자신에게 남은 건 죽음밖에 없다는 체념이 밀려오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난희에게는 그날이 그랬다. 그래서 평생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고 싶었는데, 완이 그걸 파헤치고 있다. - P11

"난 엄마 거니까. 엄마가 하지 말란 짓은 못 하지. 엄마가장애인 싫댔지. 그래서 다친 애 놔두고 한국 왔어. 당시에 엄마가 쓰러졌고 핑계도 좋았지. 여섯 살 때, 할머니 집 앞 들판에서 약 먹을 때 분명히 알았거든. 나는 엄마 거구나.
그러니까 무서워도 약을 먹으라면 먹어야 하는구나. 내가 연하를 버린 건 다 엄마 탓이야. 미치게 사랑한 남자 아프다고 버리고 나니까, 내 안의 내가 그러더라. ‘나쁜 년, 막살아버려! 양심도 버리고 막살아, 그냥!‘ 그래서 막살려고 내가 동진 선배 꼬셨어.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엄마 탓이지!"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엄마가 던진 쿠션을 집어 엄마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여태 엄마한테 툴툴대기는 했어도 이런 짓은 처음이다.  - P33

"너 어려선 똘망똘망 예뻤는데..… 나도 예뻤지?"
"지금도 나이 칠십 먹은 노인 중엔 단연 갑이지."
충남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자 희자가 킥킥 웃었다.
희자가 수줍게 웃는 모습을 보며 충남은 생각했다. 여자에게 늙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몸이 늙어 기저귀를 차도 예쁘다는 말에 기분 좋아지고, 사랑 앞에 여전히 가슴이 설레고, 그런 감정은 젊으나 늙으나 똑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여자가 늙어 좋은 게 있다면 친구를 위해 사랑도 접을수 있는 여유와 배포를 갖게 된 것 아닐까. - P45

"근데... 정말 내가 보고 싶었어?"
"문득문득 잘 사나 궁금했지."
"솔직하네. 쭉이라 그럼 안 믿을 건데."
그녀도 그랬다. 문득문득 그가 잘 살고 있나 궁금할 때가있었다. 문득 외로움이 밀려올 때나 나이 드는 게 서글퍼질때면, 사랑 하나로 세상을 다 품을 것 같던 젊은 시절과 그 시절  사랑했던 그가 떠오르곤 했다.
"근데 늙는 게 참 그렇다. 젊어서 같으면 너한테 뺨을 맞더라도, 도끼에 찍히더라도, 한번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꽉안아라도 볼 건데.... 크크... 졸려서 못 안겠다."
성재가 겸연쩍게 웃자 그녀도 따라 웃는다. 회자는 나이들어 조곤조곤 말동무 같은 사랑도 좋겠구나 싶은 생각이들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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