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모두들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 혼자만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며 생각했다. ‘경험 없는 내 자신이 조개껍질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온갖 세상일을 겪은 늙은 어른들이 거대하고 대단해보일 때가 있다. 죽은 자는 죽은 자, 그래도 산 자는 살아야한다고 분명한 선을 그을 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분간할 때, 어쩔 수 없는 모든 것을 순리라고 받아들일 때, 나는 어른들이 산처럼 거대하고위대하고 대단해 보인다.‘ - P272
‘어, 엄마... 안, 안 먹으면 안 돼?‘ 나는 그때 엄마를 거부하지 못했다. 농약 냄새가 끼치는요구르트를 받아든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엄마에게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의 생각, 나의 결정, 나의 목숨까지도 엄마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날 이후 깊은 체념이 내 안에 커다란 똬리를 틀어 나를엄마에게로 묶어버렸다. 달리는 아빠 등에 업혀 축 늘어진어린 내가 떠올랐다. 어린 내가 내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무기력했던 어린 나를 대신해 이제야 엄마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기억 안 나? 나는 너무나 또렷이 기억나는데, 그때 일. 엄마, 그때 왜 나 죽이려 그랬어? 들판에서." 엄마는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마 내가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내 입에서 그때 일을 떠올린 적이없었으니까 그건 내게 무시무시한 비밀이었다.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엄마의 그림자, 암묵적으로 엄마가 내 안에 봉인해버린 비밀. 나는 오늘 그날의 엄마 그림자를 그녀 앞에 끌어냈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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