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원리적으로 자물쇠는 바꿀수 있다. 화학 성분이 다른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화학물질의 기능은 자물쇠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느냐, 또 정보를 지닌 메시지가 오고나서 어떤 파급효과가 생기느냐에 달린 것이지 다른 요인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몸 구석구석으로 분산된 책임을 생각할 때자물쇠를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너무 많은 정보 처리내용과 정보저장 방식이 이 특정한 물질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이루는 재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다. 정리하자면 마음에서 물질은 두 가지 요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나는 속도고 또 하나는 신경계 곳곳에 변환기와 실행기가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 말고는 달리 중요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 P132
마음이 물리적 기제나 매질의 화학성분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은 이런 물리적 기제가 해야 하는 작업을 해 내기 위해서는 마음도 자신이 다스리는 기존의 몸과 소통할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엄연한 생물사적(生物史的) 사실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없다. 기능주의는 이런저런 물질의 ‘내재적 속성‘을 강조하는 생기론이나 신비주의를 비웃는다. 위스키에 어리석음이 없듯이 아드레날린에도 분노와 공포가 없다. 위스키와 아드레날린이라는물질 자체는 가솔린이나 이산화탄소처럼 마음과는 무관하다. 위스키나 아드레날린의 이른바 ‘내재적 속성‘은 이런 물질의 능력이더 큰 기능계의 성분으로 기능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 P133
자아는 도무지말을 안 들어먹은 몸이라는 꼭두각시를 부려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과 비슷하다고 본 데카르트의 시각은 그럴 때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몸은 내가 숨기려는 비밀을 얼굴을 붉히거나손을 떨거나 땀을 흘려서 기어이 드러낸다. 내가 아무리 내숭을 떨어도 몸은 지금은 토론이나 벌일 때가 아니라 성욕을 채워야 마땅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반란을 획책한다. 이보다 더 속이 터지고 담달한 것은 마음 같아서는 섹스를 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서마음이 갖은 추파를 다 떨어야하는 경우다. 그런데 몸에도 마음이 이미 있다면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마음은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일까? 몸 하나에 마음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인가? 때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몸에 바탕을 둔 원시 마음은 수십억 년의 세월 동안 생명을 유지시키는 과업을 묵묵히 수행했지만 상대적으로 느리며 무디다. 지향성도 근시안적이고 쉽게 속아 넘어간다. 세상과 치밀하게 겨루려면 더 빠르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이 더 나은 미래를만든다. - P139
간단한 학습 모델들을 그것이 등장한 역사적 순서대로 나열하면 관념 연합론(associationism), 행동주의(behaviorism), 연결주의(connectionism)가 되겠는데 이것을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ABC 학습이라고 부르자. 대부분의 동물은 의심할 나위 없이 ABC 학습능력이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꾸준히 환경의 조련을 거친 덕분에 행동을 알맞게 고치거나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현실성과 세부 조건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그런 조건 형성과 조련 과정이 신경세포로 짜인 네트워크 안에서 기적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떻게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훌륭한 모델들이 나와 있다. 생명체가 목숨을 이어 가려면 형태를 인식하고 대상을 구별하고 일반화하며 운동을 역학적으로 제어하는 다양한 목표를 완수해야 하는데 ABC 네트워크는 그 점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이네트워크는 효율적이고 알차고 견고한 실행력을 가졌고 웬만한오류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줄 안다. 후손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자연선택에 의한 솎아내기와 다듬기(선천적회로)와 개체 안에서 나중에 발생하는 솎아내기와 다듬기(경험이나 훈련의 결과로 재구축된 회로)를 구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없다고 지적한 스키너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이 네트워크는 보여 준다. 여기서 선천성과 후천성은 한 치의 틈새도 없이 꽉 맞물린다. 하지만 ABC 네트워크가 아직 해내지 못하는 인지 과제가 있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있다. 훈련의 결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인지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P149
포퍼 생물은 어떻게 행위를 걸러낼까? 물망에 오른 여러 행동을 몸이라는 심판대 앞에 세운 다음 아무리 낡고 근시안적일지언정 몸 안에 쌓인 지혜를 활용한다. 몸이 구역질, 현기증, 공포, 전율 같은 전형적 반응을 보이면서 저항하면 이것은 문제의 행동이썩 좋은 길이 아님을 뜻한다. 이것은 동전 던지기보다는 신뢰도가 높은 신호다. 여기서 우리는 진화가 뇌의 회로를 다시 깔아서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안을 깡그리 제거하여 다시는 그런 가능성이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방식보다는 그런 가능성이 떠오를 때마다 강한 부정적 충동이 일어 그것이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확률을 아주 낮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토대가 되는몸 안의 정보는 유전 명령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체득한 경험일수도 있다. 아기는 유리 위로 기어가는 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가진다. 아기의 눈에는 유리 밑의 절벽이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가앞에서 아무리 어르고 꼬드겨도, 한 번도 떨어져 본적이 없었는데도 아기는 뒤로 물러나며 겁을 낸다. 조상의 경험이 아기에게 안전한 쪽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낯선 음식을 먹인 다음 바로 토하는 약을 주사한 쥐는 그 다음부터 전에 먹고 토한 적이 있는 음식과모양이나 냄새가 비슷한 음식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이 경우에는 쥐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안전한 쪽을 선택하도록 만든 정보를 얻었다. 아기가 무서워하는 유리가 실제로는 안전하며 쥐가 꺼리는 낯선 음식에 독이 들어 있지 않으므로 어떤 여과장치도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작정 덤벼드는것보다는 안전하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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