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흔들리고 있었다.
펄럭펄럭펄럭펄럭.
도대체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온갖 바람들, 그 어디선가에서 머리 풀고 일어난 바람들이 나뭇잎을 떨구고, 닫힌 창문을 흔들고 미친년 치마폭을 펄럭이다가 그래도 아직 기운이 남아서 여기저기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늘진 곳의 썩은 고인 눈을 한두 번 헤적이다가는 이윽고 한데 모여서 서커스천막의 빈틈 사이를 여지없이 짓쑤시고 있었다. - P164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구덩이 속을 기어내려간다. 가는 사다리가 수직으로 뻗어내려 있다. 땅으로부터 오십 미터의 깊이 발 하나 잘못 놀리면 그대로 추락해서 즉사해버린다. 종대는 순서를 기다려사다리에 몸을 싣는다. 얼핏 비 오는 산 계곡이 가득 눈에 찬다. 잠시 심호흡을 한다. 비릿한 공기가 가슴 가득히 차오른다. 물 속으로가라앉는 잠수부들이 얼핏 숨을 모아 쉬듯 종대는 온몸 구석구석에맑은 공기를 분배한다.
다시 갱을 나설 때까지 이 맑은 공기를 조금씩조금씩 아껴 쓰지않으면 안 된다. 땅 속은 공기가 희박할 뿐 아니라 더운 열기에 차있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숨이 차오른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를위한 공기가 아니다. 땅 밑에 묻힌 죽은 사람들, 수억 년도 전에 우리가 얼굴에 주름을 만들듯 땅이 분노로 깊은 주름을 만들 때 파묻힌 나무뿌리와 길짐승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지막 숨을 모조리뿜어내어 만든 지하수와 같은 공기인 것이다. 그것은 산 자를 위한공기가 아니며 그것은 오직 죽은 자들의 탄식 속에 조금씩 형성되었다. 그래서 그 공기는 몸 속에 뛰노는 혈관을 서서히 죽여나간다. 살아서 조금이라도 손상되지 않은 몸으로 이 금광을 도망쳐 나가려면 힘껏 들이마신 맑은 공기로 생명을 지켜나가야 한다.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