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원한다면 보수의 생리부터 잘 알아야 한다지 않는가. 진화적 혁신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논하기 전에 그것의 방해 요인부터 검토해보자. 만일 내일이라도 당장 바퀴 달린 동물이 출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틀림없이 그 동물은 생명의 역사에서 진화적 혁신을 가장 최근에 이뤄낸 중요한 존재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왜그럴까? 일단 ‘발생적 제약developmental constrain‘ 때문일 개연성이 높다. 발생적 제약이란 안정된 발생 체계의 본성으로 인해 특정변이들을 발생시킬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제약이다. 또는 발생 체계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특정 변이들을 아주 드물게만 발생시키는 경우도 넓은 의미에서 발생적 제약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네의 체절 수는 종에 따라 15개부터 191개까지 다양하지만 흥미롭게도 모두 홀수이다. 한편 곤충의 경우에는 머리 부분에는 6개, 가슴에는 3개, 그리고 배에는 9개의 체절이 있어서 총 체절 수는 18개로 고정되어 있다. 이것들은 발생적 제약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다. 실제로 초파리의 경우에는 ‘간극 유전자 gap gene‘가 초파리의 체절 수를 조절하는데, 인위적으로 이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키면 인접한 체절들 사이에 경계가 무너져 결국 초기 배아상태에서 죽고 만다. 이러한 변이는자연 상태에서는 아주 드물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파리의 체절 수가 변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발생 상의제약 때문이다(Arthur, 2001 - P290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호메오박스들이 초파리에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쥐와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부터 호메오 유전자의 일종인 Hox 유전자에 대한 연구 결과가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다. 예를들어, 초파리의 발생과정에서 배아의 전후 축을 결정하는 염기서열은 포유류의 척추와 골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에도 같은형태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유사한 염기 서열이 계통적으로 아주 동떨어진 종에서도 매우 유사한 기능을 하게끔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 P292
좀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Hex 유전자와 같은 마스터 조절 유전자들은 생명의 다양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레고 블록이다. 개구리, 악어, 제비, 침팬지, 그리고 인간을 만들려면 초파리의 경우보다는 레고 블록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다양한 생명체를 진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자연은 초파리를 위해 사용했던 레고 블록을 다시 활용해왔다. 생명의 다양성은 말하자면 레고의 수와 조립 방식이 변화된 결과이다. 즉 Hox 유전자 수의 증감과 그 유전자의 발현 방식의 차이때문에 생겨났다. 아래 그림은 똑같은 형태의 두 건물이 어떤식으로 분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두 건물은 ‘중복과 분화‘ 메커니즘에 의해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Hox 유전자 수의 증가와 이후에 생기는 발현 방식의 변화, 즉 ‘중복과 분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294
마지막 한 가지 시사점은 혁신을 촉진하는 외부적 요인에 관한 것이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과 백악기의 대멸종 사건에서처럼 때로는 강력한 외부적 요인들이 혁신을 몰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의할 사항이 있다. 외부적 요인들은 대개 혁신의 촉발제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내부적 변화 동인이 없이 외부적 요인만으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주장이 너무 강한 것 같다면, ‘외부적 요인은 내부적 요인-예컨대, 발생 유전자의 변화과 함께 작용할 때에만 혁신을 일궈낸다‘ 정도로 말하면 될 것이다. 캄브리아기에 아무리 적응 공간이 팽창했다 해도 만일 당시에 Hox 유전자가 구비되어 있지않았더라면 대폭발은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백악기에 제아무리 큰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해도 만일 당시에 포유동물들이 전혀 살고 있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인류는 결코진화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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