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여기에 올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이모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겹친 날, 이모에게 특별한 날이면 나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겹친 운명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집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할 수 없는일이었다. 어차피 여기에 와 있고, 더더욱이 장미꽃을 들고 어머니에게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선 그랬다.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미꽃을 주고받는 식의, 삶의 화려한 포즈는 우리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 P28
외식을 하기로 한 장소는 이모네 수준에 맞게 호텔의 정통 프랑스식당이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어디로갈까 많이 망설이다정한 곳이라는 이모의 부연 설명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의 외식은, 물론 그것마저 일년에 몇 차례 불과한 일이지만, 망설임 한번 없이 단호하게 돼지갈비집이었다. 고기 타는 연기가 식당 바깥까지 자욱하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는 어머니의 자랑처럼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는 먹는 일도 노동이었다. 쉴새없이고기를 뒤적이고, 연기를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볼이 미어지게 싸 넣은 상추쌈으로 격렬한 입 운동이 불가피한 거기. 남동생과 나와 어머니는 전쟁터 속의 병사들처럼 묵묵히,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돼지고기와 싸우다 거의 지쳐서 식당을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여기 이모네 외식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