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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일은 별다를 것 없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라시모 호텔의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노란색 아이섀도를 고쳐 바르던 사샤는 세면대 옆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화장실 칸막이의 아치형 문 너머로 희미한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누는 여자의 것이분명했다. 가방의 둥근 가장자리 안쪽으로 옅은 초록색 가죽 지갑이 얼핏 엿보였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당시 오줌 누고 있는 그여자의 맹목적인 믿음에 짜증이 났다는 걸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코를 베어가는 세상에서 훤히 다 보이는 곳에 물건을 흘리고 간 주제에, 다시 나왔을 때 그 물건이 그대로 있길 바라는거야? 사샤는 여자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사샤가 늘 느끼는 가슴속 깊은 곳의 감정을 위장한 것일 뿐이었다. 손 안에 굴러들어온 두툼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지갑, 더없이 칙칙하고 평범하게 생긴 것이 순간을 포착하고 도전을 받아들이고 튀어오르고 달아나고 물불 가리지 않고, 위험천만하게 살면서 ("알아들었어요"라고 심리치료사인 코즈가 말했다). 그 망할것을 습득하기보다는 거기 그대로 놔두는 편이 나아 보였다. -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