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는 얼굴을 개인이 맡은 역할이나 그 역할에 대한 그사람 고유의 해석, 혹은 연기를 통해 그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자기 이미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얼굴은 그처럼 개별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얼굴은 결코 가면과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가면의 뒤에 있다고 상상되는 무엇이다. 어떤 사람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것이 가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그 가면을 굳이 벗기려 하지 않을 때, 나아가 그의 연기에 호응하면서 그가 가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실수로 가면이 벗겨지더라도 못 본 체할 때, 한마디로 그의 가면 뒤에 있는 ‘신성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갖게 된다. 고프먼은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 상호작용의 목표라기보다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상호작용의 목표들 의견을 나누고 협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은 보통 서로 얼굴을 잃지 않고 또 잃지 않게 하려는 노력속에서 진행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사회 안에서 행위자로서 목표지향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동시에, 사람으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의례를 수행한다. 이는 총체로서의 사회가 구조 structure와 상호작용 질서interaction order로 이원화되어 있음을 함축한다. ‘구조‘가 지위와 역할의할당 및 (베버적 의미에서) 자본의 분배와 관련된다면, 상호작용 질서는 성원권의 인정과 관련된다. 현대 사회는 구조의 면에서 불평등한 개인들이 상호작용의 질서 안에서는 평등하다고 가정한다. 즉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자본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람으로서 평등하다. 상호작용 의례는 바로 이 점을 확인한다. - P90
왼쪽의 항목들을 ‘전통 사회‘에 오른쪽의 항목들을 ‘현대 사회‘에 커속시킨다면, 우리는 이것을 현대화가 개인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의 대차대조표로 읽을 수 있다. 버거는 우리가 명예의 세계를 떠나 존엄의 세계로 옮겨왔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일견 바람직해 보인다. 명예는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지만, 존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존엄의 관념은 위계를 부정하고 우리를 평등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평등은 벌거벗은 인간들의 평등, 역할의 갑옷을 벗고 사적인 공간으로물러난 고독한 개인들의 평등이다. 그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규범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좌표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이 도표가 현실의 차이가 아니라, 가치의 대립을 나타낸다는 점에 주의하도록 하자, 규범과 자유의 대립은 현대인이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규범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옷을 입은 인간과 벌거벗은 인간의 대립은 현대인이 옷을 입은 자기, 즉 남들에게 보여지는공적인 자기를 진짜 자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P96
모욕을 명예의 훼손으로 정의할 때, 이런 문제들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명예훼손은 주로 평판이나 위신의 손상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협소한 개념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법적으로 모욕 또는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행위의 ‘공연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외에 그 행위를 보거나 들은 제삼자가 있어야 한다. 둘만 있는 자리에서 욕설을 한 것은 모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사회학 연구에서모욕이라는 키워드를 거의 발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사회학은 모욕을 개념이 아니라 현상으로만, 즉 인종차별이나 성폭력의 장면들을 구성하는 요소로만 다룬다.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념이 그것을 포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욕을 더 포괄적으로 정의하려면 그것을 존엄과 연관시키면서도, 감정처럼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처럼 객관적으로 기술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호작용 의례에 대한 고프먼의 논의는 이러한 - P104
1) 모욕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은 지금까지 주로 법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모욕에 대한 사법적 제재와 표현의 자유의 충돌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 모욕죄‘가 커다란 논쟁거리였다.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익명성을이용한 공격성 표출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지적한다. 한편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치인에 대한 조롱은 그의 인격이 아니라 그가 수행하는 공적 역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엄에 대한 공격으로서의 모욕과 구별되어야 한다. 정치인에게 달걀을 던지거나 그를 본딴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태우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이러한 퍼포먼스에서, 달걀에 맞고 불타는 것은치가의 ‘얼굴‘이 아니라 그가 입은 역할의 옷이다. 물론 우리는 가면에 대한 의례를 통하여 얼굴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 하지만 정치인의 경우, 그의 공적 가면 뒤에 있는 것은 얼굴이라기보다 목소리들voices이다. 정치인은 타인의 목소리로 말하는 자인 것이다. 유권자들은 나쁜 정치인의 가면을 찢으면서, 그가 실제로 누구의 목소리로 말하는지 폭로하고자 한다. - P107
혹자는 이러한 변화를 세계의 탈주술화Entzauberung der Welt 와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고프먼의 정의에 따르면, 의례란 "한 개인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존경과 경의를 그것 자체 혹은 그것의대표자에게 표현하는 형식적이고 관례화된 행위" 이다. 그런데 오랜 합리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주술로부터 풀려났으며, 그결과 신이나 정령 같은 전통적인 숭배의 대상들은 그 절대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개인이다. 인격human personality은 한때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이 광휘를 잃은 시대에 여전히 신성하게 여겨지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 P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