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상대방은 나를 ‘무시‘할 수있다. 즉 나의 신호에 화답하지 않고,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행동할 수 있다. 상호작용의 의례는 언제나 위반과 중단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그 때문에 문화적 코드의 단순한 실행-국지적 활성화‘ -로 간주될 수 없다. 의례의 사슬을 구성하는 행위들 하나하나는 질문이자 요구이며, 초대이자 도전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인정투쟁‘의 계기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 P59

인정투쟁이라는 단어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대한 헤겔의 논의와거의 자동적으로 결부되는 경향이 있다. 정신현상학, 4장에 나오는이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해설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타사의 인정을 욕구한다는 점에서 다른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 자기 보존의 욕구를 극복하고 이 인간적인 욕구를 따를 때, 즉 타자의 인정을 위해 생명을 걸때 비로소 자신을 인간으로 확증한다. 이러한 생사를 건 위신투쟁이 없었다면 역사가 개시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은 자로부터 인정을받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간적 현실이 인정된 현실로 구성되기 위해서, 최초의 두 인간 중 한 명은 타자에 의해서 인정받지 않은 채 타자를인정해야 한다. 즉 인간은 최초의 상태에서부터 필연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주인이거나 노예이다. 하지만 여기서 변증법이 시작된다. 주인은 노예의 인정을 받지만, 그가 획득한 인정은 그에게 무가치한 것이다. 그의 욕구는 그가 인정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인정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예는 타자(주인)를 인정한다. 따라서 상호 인정이 발생하기 위해서 노예는 단지 스스로를 이 타자에게 강요해서 그로부터 승인받기만 하면 된다. 주인은 노동하도록 노예를 강요한다. 그러나 노동하는 과정에서 노예는 자연을 지배하게 된다. 노예는 이제 자신의 노동에 의해 변화된 기술적 세계에서 군림한다. 노예는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와 더불어 해방투쟁을위한 새로운 객관적 조건들을 창조해낸다. - P60

그렇다 하더라도 노예의 존재는 인정투쟁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패터슨은 노예제도와 명예에 집착하는 문화 - 플라톤을 따라 그가 타이모크라시timocracy 라고 부른 것ㅡ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우월해지려는 욕망, 권위에 대한 복종, 관직에 대한 야망, 군인다움에 대한 숭상, 금전에 대한 집착 등이 플라톤이 생각했던 타이모크라틱한 인간형의 특징이었다." 대규모의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어김없이 타이모크라틱한 문화와 인간형이 발달한다.  - P61

4) Orlando Patterson. 같은 책, p. 386, note 14. 우월해지려는 욕망, 권위에 대한 복종, 관직에 대한 야망.....… 이런 묘사를 읽다보면 나의 머릿속에는 막연하게 어떤 초상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초상화는 고대 그리스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경상도 출신이고 강남에 거주하며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60대 남자. 한국의 경상도는 미국 남부만큼이나 타이모크라틱한 것 같다. ‘사나이다움‘에 대한 자부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상도는 ‘양반 문화‘가 뿌리 깊은 곳이다. 한국이 노예제 사회였다는 제임스 팔레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양반 노릇을 하려면 종이 있어야하고, 양반 의식이란 ‘아랫것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태도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국남부의 타이모크라틱한 정서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KKK단의 결성으로 표출된 바 있다. 경상도가 언제나 한나라당 - 지금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어떤 이름으로 바뀔지모르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광주학살을 주도했고 또 은폐했던 세력에 몰표를 주는 데에는 ‘지역감정‘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좀더 깊은 정치인류학적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 P61

한편, 우리는 사회적 성원권의 부여가 문화적 자격을 요구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문화적 지식이나 사회화 과정을 통해 습득된다고 여겨지는) 상호작용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은 실제로 사회라는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이것은 그에게 특별한 도움이 필요함을 의미할 뿐이지, 그에게 사회 구성원의 자격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사회적 성원권을 요구하는 데는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다. 물리적인미에서 사회 안에 이미 들어와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회적 성원권은 사회성 sociability과 별개임을 인식해한다. ‘히키코모리‘에게도 사회적 성원권을 보장해야 하듯이, 외국인에게 사회적 성원권을 부여하는 데 ‘동화‘나 ‘적응‘을 조건으로 내걸어서안 된다.
외국인이 일단 사람으로서 환대의 권리를 누리다가, 일정 기간이 경과하고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사회적 성원권을 얻는다는 생각환대의 행위 바깥에서 사회적 성원권에 대해 말할 수 있음을 전제한하지만 사회적 성원권이 법적 지위와 다른 것이라면, 사실상 우리는 타인의 환대 속에서만 자신의 사회적 성원권을 확인할 수 있다. - P65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는 스티그마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국인이 그 자체로 낙인찍힌 범주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면서, 그들이 우리 문화의 장점들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돈 많고, 교양 있고, "원더풀"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그들이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판명된다면, 가령 그들이 돈도 없고, 교양도 없는 데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네 방식을 고집한다면, 게다가 금방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아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자들을건드린다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환대는 철회될 것이다. 스티그마가 있는 개인이 그에게 추천되는 특정한 행동 노선 line of action에서 벗어났을때처럼 말이다. 즉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환대 혹은 사회적 성원권은 조건적이다.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을 구별하는 사람은 결국 조건적 환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69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더글러스의 통찰은 동물이나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집밖에서 키우는 돼지나 오리가 집 안에 들어오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흑인이 백인 전용 구역에 들어가거나, 여자가 남성을 위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더럽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더러움이 단지 자리의이탈에서 비롯되는 혼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흑인 전용구역에 들어간 백인은 자신이 오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느낀다. 반면에 백인 전용 구역에 들어간 흑인은 그 자신이 오염원이다. 이는 더러움과 오염의 관념을 단순히 "체계적인 질서화와 분류의 부산물""로간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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