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0대가 된 폴란스키의 피해자는 이미 그를 용서했으며 그가 기소되어 처벌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사건의 각하를 요청하는 진술까지 법원에 제출했다. 캘리포니아주가 피해자의 명백한 바람을 무시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려는 것을 시민들은 모순된다고 여겼지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폴란스키 사건은 애초에정의를 구현하려는 피해자의 바람이나 악감정을 해소하려는 피해자의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재판에 회부된 것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주민을 대신해서 캘리포니아 주가 제기한 사건이었다. 국가가 폴란스키에 대해 더는 악감정을 품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폴란스키가 앞으로도 다른 사람에 위험을 가하지 않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 범죄는 개인에게만 행해지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게도 행해지는 것이다. (•••) 중대한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체포되어 재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유죄로 결정되면 그에 합당한 선고를 받아야 한다." - P164
사형선고를 받지 않은 범죄자와 생존한 피해자나 사망한 피해자의 가까운 친척들이 악감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접근 방법이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란 프로그램이다. 회복적 사법은 범죄를 피해자나 공동체만이 아니라 국가에 가한 위법 행위라 생각한다. 따라서 법죄자와 피해자를 떼어놓고 변호사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말하도록 하는대신에, 둘 모두가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조건에서 직접 대화하도록 허용한다. 또 범죄자에게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고, 피해자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지 말라고 유도하거나 아예 그럴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에 범죄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마음껏 말하도록 격려한다. 범죄자와 피해자(혹은 피해자의 친척)가 훈련된 중재자의 입회 하에 만나게 한다. 이때 중재자는 두 사람에게 상대의 말을 끊거나 욕설을 하지 말라는 기본적인 규칙만을 제시한다. 피해자와 범죄자는 마주보고 앉아 서로 눈을 쳐다보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의 감정, 범죄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 등을 번갈아 얘기한다. 범죄자는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 피해를 생생하게 듣게 되고, 피해자는 범죄자를 이해할 수없는 괴물이 아니라 나름의 역사와 목적을 지닌 인간으로 보게 된다. 또한 범죄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이런저런 점들을 연결해서, 자신이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유까지 깨닫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 P168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 사회가 소규모 사회의 분쟁 해결 방법들을 교훈으로 받아들여 이런 결함들을 완화할 수 있다는 걸 살펴보았다. 민사사법체제에서는 중재자를 훈련시키고 고용하는 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면 판사들을 격무에서 어느 정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재에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승소한 원고의 변호사 비용을 패소한 피고에게 부담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편 형사사법체제에서는 회복적 사법을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미국의 형사사법체제는 징벌보다 갱생을 우선시하는 유럽 모델이 범죄자에게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와 경제에도 더 유익한지 정밀하게 재평가해봐야 할 것이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