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가 살아생전에 왜 그의 희곡들을 출판하지 않았느냐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의문이다. 그의 시대에는 극작가의작품이 극작가가 아니라 극단 소유였고 따라서 작가가 그 작품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흔히 지적된다.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셰익스피어와 그의 동료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감안할 때 그가 자신의 작품의 충실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했다면 틀림없이 그 뜻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부실한 판으로만 나돌고 있었으므로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셰익스피어가 일단 공연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가운데 몇몇은 공연은 물론이고 읽히도록 쓰였을지도 모른다고 믿을(적어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이상하다. 특히 4편의 희곡들 - 「햄릿」, 「트로일러스와크레시다」, 「리처드 3세, 코리올라누스 - 은 부자연스럽게 길어 3,200행 이상이나 된다. 이 내용이 일부 삭제되지 않고 공연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분의 내용을 담은 대본은 집에서 여가시간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보너스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Hal - P181

지금까지 통틀어 셰익스피어 후보자로 50명 이상이 제시되었다. 이 모든 주장의 한 가지 공통점은 셰익스피어가 그 현란한 희곡들의 작가로는 조금 불만족스럽다는 확신이다.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생각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었기를 희망하는 바이지만, 셰익스피어가 자라난 환경은 열악하거나 결코 보잘것없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꽤 큰 도시의 시장이었다. 그리고 사실 보잘것없는 환경에서자라난 사람이 뒤에 성공을 거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셰익스피어가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훨씬 더 지적인 희곡을 쓴벤 존슨 역시 마찬가지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존슨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에서 다소 박식한 어휘를 사용한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또한 그가 시골에서 자라났음을 분명히 반영하는 비유적 표현법도 사용했다. 조너선 베이트는< 심벨린>에 나오는 2행 "황금의 젊은이와 처녀들은 모두/굴뚝 청소부처럼 흙으로돌아가야 한다"를 인용했는데, 이 구절은 16세기에 워릭셔에서 꽃이피어나는 민들레를 황금의 젊은이(golden lad)라고 하고 그 씨를 퍼뜨리려고 하는 민들레를 굴뚝 청소부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 때 추가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누가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특권층으로자라난 정신(臣)일까, 아니면 시골에서 자란 사람일까? 비슷한 예로 폴스타프는 소년 시절에 자신은 "시 참사회원의 엄지반지 속으로"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고 말하는데, 이런 특이한 이미지가 누구에게 떠오를 가능성이 더 높을까, 귀족일까, 아니면 그 아버지가 실제로 시 참사회원이었던 사람일까? - P212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평가해볼 때, 우리는 물론 한 사람이그렇게 많고 현명하고 다양하고 재미있고 또 언제나 기쁨을 주는 작품들을 생산해냈다는 데 대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천재성의 증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오직 한 사람만이 우리에게 그런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환경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그 사람은 바로 스트랫퍼드 출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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