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는 않았지만 귀로는 어미 곰의 덩치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곰은 우거진 덤불을 빠르게 돌아 새끼들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곰의입에서는 깊고 낮은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천둥소리나 나무쓰러지는 소리와도 흡사했다.
으르렁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빈터로 들어선 곰이 멈춰 서서 까만 눈으로 글래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에 얼굴을 갖다 붙이고 새끼들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를 코앞에 둔 곰은 사륜 짐마차의 커다란스프링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글래스는 근육으로 덮인 놈의 몸에 경탄했다. 두꺼운 앞다리가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어깨, 은빛이 도는 털. 회색곰이 틀림없었다.
글래스는 크게 반응하지 않으려 애쓰며 몇 가지 선택지를 떠올려보았다. 본능은 그에게 도망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다시 버드나무 숲 속으로! 강물 속으로! 깊이 잠수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면 하류까지 무사히내려갈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곰은 어느새 30미터쯤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글래스의 눈은 타고 오를 만한 미루나무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높은 데 올라가 총을 내려 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문제는 나무들이 참 뒤에 늘어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버드나무 숲도몸을 숨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이자리에서 곰을 쏘는 것. 인슈타트로 53구경 총알을 딱 한 번 발사해 회색곰을 쓰러뜨려야 했다. - P35
회색곰이 다시 네 발로 기어 글래스에게 다가왔다. 글래스는 얼굴과 가습을 보호하기 위해 공처럼 몸을 웅크렸다. 곰이 그의 뒷덜미를 물고 위로번쩍 들어올렸다. 어찌나 세차게 흔들어대던지 글래스는 척추가 부러져버릴까 두려웠다. 곰의 이빨이 그의 어깨뼈를 으스러뜨렸다. 발톱은 그의 등과 머리를 반복해서 할퀴었다. 그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마침내곰이 글래스를 떨어뜨리고 그의 허벅지를 물었다. 곰은 다시 그를 흔들어대다가 한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아직 의식은 살아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글래스는 반듯하게 누워 위를 올려다보았다. 회색곰은 그의 앞에서 뒷다리로 서 있었다. 어느새 글래스는 우뚝 선 거대한 짐승의 모습에 매료되어 있었다. 묘하게도 더 이상 공포와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곰이 마지막으로 포효했다. 그 요란한 소리가 글래스의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이내 육중한 곰이 그의 몸을 덮쳤다. 축축히 젖은 곰의 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어떻게 된 일이지?‘ 글래스는 오두막집 널빤지 현관에서 소년의 얼굴을 핥아대는 누런 개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환하던 하늘이 금세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