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폴 성당은 약 12에이커나 되은 넓고 탁 트인 광장에 서 있었는데, 이 광장은 원래 취지에서는 다소 벗어난 묘지 및 시장 역할을했다. 평일에는 이 광장에 인쇄업자와 서적상들의 점포가 늘어서 있었다. 언어에 대한 본능적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젊은이를 매혹시키는광경이었을 것이다. 인쇄된 책은 100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들이 처음으로 인쇄된 책이 약간의 여분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물품이 되었다. 마침내 보통사람들도 지식과 교양을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런던에서는 7,000종 이상의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들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는 한세대의 극작가들이 흡수해서 번안하거나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의 보고였다. 이것이 바로 재능이 있고 또 준비를갖춘 셰익스피어가 걸어들어간 세계였다. 그는 아마 자신이 천국을찾아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P61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런던에 처음 온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1585년부터 1592년까지 그가 어디 있었는지는 그의 전기에조차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기는 그가 스트랫퍼드를 떠나서(아내와 가족을버려둔 채 떠난 듯하다) 배우와 극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시기이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문학사에 이처럼 매력적인 공백, 그것을 메우려는 열의에 넘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공백은 아마 없을 것이다. - P66

단 하나의 예외인 글로브 극장을 제외한 런던의 모든 다른 극장들도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오락의 장소로 대여되었다. 특히 동물을 괴롭히는 놀이가 흔히 행해지곤 했다. 동물 괴롭히기는 영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국이 이 놀이의 본고장으로 인식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화이트홀에서 자주 곰을 괴롭히는 놀이를 벌여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접대하곤 했다. 고전적인 형태의 이 놀이는 곰한 마리를 링 안에 넣고(때로는 기둥에 줄로 묶어놓기도 했다) 맹견몇 마리로 하여금 곰을 공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곰은 값이많이 나갔으므로 황소나 말 같은 다른 동물이 곰 대신 사용되기도했다. 한 가지 변형은 침팬지 한 마리를 말 등에 태우고 개들로 하여금 그 둘을 모두 공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마구 뛰는 말 등에서 죽지않으려고 단단히 매달려 소리를 지르는 원숭이를 밑에서 뛰어오르며 공격하는 개들을 보고 사람들은 무척 재미있어했다. ‘파우스투스 박사(Doctor Faustus)」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관객이 같은 장소에와서 어쩔 수 없는 처지의 동물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광경을 보고즐거워했다는 사실이 그 어떤 말보다도 당시의 시대상을 더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피드 - P83

여성 연기자들을 꺼리는 이런 관행은 북유럽의 전통이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여성 역할을 여자 배우들이 연기했다. 유럽을 여행하던 영국인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곤 했다. 그들은 여자들이 무대에서도 실제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역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로 놀랐던 듯하다. 셰익스피어는 여성주인공들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 「십이야(Twelfth Night)」의 바이올라 등 - 로 하여금 소년으로 가장하게 함으로써, 즉 여자역을 맡은 소년이 소년 역을 하도록 하여 성의 구분을 혼동시킴으로서 최대 효과를 이끌어냈다. - P89

덧붙여 말하자면, 희곡은 작가가 아니라 극단의 소유물이었다. 완성된 희곡은 무대 상연을 허가하는 연회 국장의 도장을 받은 다음극단이 가지고 있어야 했다. 흔히 셰익스피어가 죽으면서 남긴 유품가운데 희곡 원고나 프롬프터용 대본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유품이 있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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