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은 결정적인 두 단계 중 첫 단계에 불과하다. 두 번째 단계는 생태학자들이 확립establishment 이라 부르는 단계이다. 이것은 특히 유성 생식을하는 생물에게 중요하다. 해변에 안전하게 도착한 다음에도 거미나 왕도마뱀은 자기 지속적 개체군을 확립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먹이와 은신처, 그리고 (임신한 암컷이 아니라면) 짝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는 적응 능력과 함께 운도 따라야 한다. 척추동물중에서 파충류는 비교적 굶주림에 잘 견딜 수 있어 유리하다. 또 어떤파충류 종(예컨대 서태평양의 작은 섬들에 널리 분포하는 도마뱀붙이 레피도닥틸루스 루브리스 Lepidodactylus lugubris 처럼)은 처녀 생식 전략을 선택한다. 고독한 개척자로 새로운 섬에 도착한 종에게 처녀 생식은 적막한 땅에서 짝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 P196
태풍이 지나간 뒤, 그 위에 나무가 자라는 뗏목들이 목격되었다. 바다가 비교적 고요하다면, 이러한 뗏목이 해류를 타고서, 그리고 나무를 미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몇 주일 뒤에 출발점에서 수백 km나 떨어진 육지 해변에무사히 도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람쥐나 들쥐 같은 작은 동물은그런 뗏목의 일부인 나무에 실려 이동함으로써 새로운 섬에 정착할 수 있다. 다만, 그러려면 같은 종 한 쌍이 동시에 뗏목을 타야 하는데, 그런 우연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동물이 그런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증언도 간혹 있다. 윌리스는 커다란 보아가 뗏목을 타고 남아메리카 해안에서 약 300km 떨어진 서인도 제도의 세인트빈센트 섬으로 이동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뱀은 "서양삼나무 줄기에 몸을 친친 감은 채 도착했으며, 항해 동안에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양을 몇 마리 잡아먹은 뒤에 사람들에게 잡혀죽었다." 이것은 확산에는 성공했지만 확립에는 실패한 사례이다. - P197
이렇게 다양한 토착 비둘기 종의 명단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확산 범위뿐만 아니라 다양성 범위도 아주 넓다는 사실이다. 비둘기 조상들은여행 능력이 뛰어나 많은 섬에 정착해 살아갔다. 그러나 아주 멀리 여행하는 경우는 드물어, 일단 어느 섬에 정착하면 그곳에서 격리된 채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어갔다. 그런데 거기서 분기한 종은 확산 능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도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섬에서 일어난 진화는 모험적이고 뛰어난 비행 능력을 가진 조상을 지상에서만 살아가는 종으로 변화시켰고, 결국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멸종의 길을 걷게 했다. 섬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놀라운 점을 많이 보여주지만, 멸종을 향해 나아가는 일방통행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 P200
존슨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가설은 지금 아주깊은 바다가 있는 지역에 한때 육교가 드러났다고 가정하는 것보다 더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코끼리, 하마, 사슴 등의 세계적인 분포 패턴을 감안하면 존슨의 가설은 더욱 설득력이 커진다. 분포 패턴에 주목한 과학자들은 존슨 외에도 많다. 하마 화석은 마다가스카르 섬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시칠리아 섬, 크레타 섬, 몰타 섬, 키프로스 섬 등에서도 발견된다. 사슴 화석은 사르데냐 섬, 코르시카 섬, 시칠리아 섬, 크레타 섬, 몰타 섬, 에게 해의 작은 섬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일본의 이시가키 섬, 미야코 섬, 오키나와 섬에서도 발견된다. 코끼리 화석 역시 이들 섬 대부분에 남아 있다. 다른 대형 포유류 화석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코끼리 화석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 만약 육교가 정말로 존재했다면 다른 네발짐승들도 이들 섬에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포유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하마와 사슴 역시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모험을 좋아하고 헤엄을잘 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분포 패턴이 눈길을 끄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왜소화 패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륙도의 지리적 격리는 하마와 사슴, 코끼리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계통 진화를 통해 몸크기가 작아졌다. - P213
오펜버그가 제기한 생태학적 질문 중에서 한 가지는 얼핏 보기보다는까다롭다. 그것은 코모도왕도마뱀은 왜 그렇게 큰가 하는 것이다. 이질문이 까다롭다고 한 이유는 서로 정반대되는 두 가지 질문을 포함하고있기 때문이다. (1) 코모도왕도마뱀은 왜 다른 도마뱀처럼 작지 않은가? (2) 코모도왕도마뱀은 왜 그보다 더 커지지 않았는가? 두 번째 질문은쓸데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곧 살펴볼 많은 사실들을 감안하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펜버그는 "몸크기가 포식 습성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라고 썼다. "거의 모든 생물에서 포식자의 최적 몸크기는 대체로 크기가 다른 먹이들의 풍부성과 포식자가 그 먹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상대적 에너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된다. 이것을 더 알기 쉽게 대충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진화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큰포식자일수록 큰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고, 작은 포식자가 작은 먹이를 잡아먹는것보다 더 효율적이라면, 진화는 어느 단계까지는 거대화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어느 단계까지 나아갈까? 그것은 포식자의몸집이 과도하게 커져 효율성이 다시 감소하는 단계까지일 것이다. 거대화의 정도는 다양한 먹이 동물들의 크기와 풍부성에 따라, 그리고 이 동물들이 포식자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P221
법칙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양 방향으로 일어나는 몸크기 변화에 대해서 포스터는 명백한 원인 두 가지를 들었다. 포식자가 감소하고 이종 간 경쟁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설치류 같은 작은 포유류는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몸집이 커진 설치류는 지방과 물을 잘 저장할 수있어 먹이가 모자라는 시기도 잘 견딜 수 있고, 체온을 유지하는 데에도유리하고, 더 큰 새끼를 낳을 수 있고, 더 오래 살 수 있고,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각 세대에 태어나는 새끼들 중 가장 큰 개체들이 후손을 남길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몸집이 커진 것은 진화의 결과일 것이다. 반면에 몸집이 작아진 이유는 다른 것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설치류는 개체수가 많아지면 자동적으로 번식률이 감소하지만, 우제류는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포스터는 주장했다. 그래서 사슴과 하마를 비롯한 우제류는 "특히 먹이 공급이 한계에 이르는 상황에 처하기 쉬우며, 그 결과 새끼는 영양부족으로 발육 부진이 나타나게 된다." 내부적인 개체수 조절 메커니즘이 작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종의 개체수가크게 늘어나면 발육 부진이 나타날 수 있다. 기아로 인한 발육 부진은 왜소화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기아가 거듭될 경우 작은 개체가 큰 개체보다 번식에 유리하다면 이 역시 왜소화를 초래할 수 있다. - P240
포스터는 흥미로운 사실을 한 가지 더 지적했다. "섬에서 적응은 더 빨리 그리고 더 명확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은 유전자 풀의 규모가 작고, 유전자가 다른 개체군으로 흘러가는 데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하다. 대륙에서 일어나는 진화를 어떻게 말하든 간에, 우리가 그것을 빠르다거나 명확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빠른속도와 명확성은 섬의 진화가 지닌 특별한 매력 중 하나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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