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의 관찰에 따르면, 사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린다.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것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손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1938년 6월, 버지니아 울프는 "3기니』를 출판했다. 전쟁의 근본 원인을 용감하게 성찰한 이 책은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 그리고 동료 작가들이 스페인에서 일어난 파시스트들의 반란[1936년]에 온 정신을 집중해 왔던 지난 2년 전부터씌어진 이 책은,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당신의 견해로는 우리가전쟁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본 런던의 어느 저명한 변호사에게 보내는 때늦은 답장이었다. 울프는 자신과 그 사이에서는 진솔한 대화가 오고갈 수 없다고 신랄하게 말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비록 자신이나 그나 모두 똑같은 계급, 즉 "교육받은 계급에 속해 있지만, 둘 사이에는 아주깊은 골이 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변호사는 남성이지만 자신은 여성이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남성들이라는것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전쟁을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성들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혀 느껴본 적도 없고 누려본 적도없는 "어떤 영광, 어떤 필연성, 어떤 만족"을 싸움 속에서 구하기때문이다. 그런데 [남성들과 전혀 공유하고 있지 못한 전쟁에 대해서 그녀같이 교육받은 여성이 말하자면 특권을 누리는 부유한 여성이 무엇을 안단 말인가? 게다가 그녀가 그 변호사와 똑같은 이유로 전쟁이라는 유혹에 진저리치는 것이기나 한 걸까? - P19

그러나 군대들 간의 전투가 아니라 학살된 비전투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들이 오로지 전쟁에 대한 거부감만을 자극하리라는 것이 사실일까? 분명 이런 사진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호전성을 부추길 수도 있다. 이런 의도로 그 사진들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울프와 그 변호사가 똑같이 반응할 것이라는 말은, 순전히 이 무시무시한 사진이 이미 광범위하게 공유된 견해를 확증해 주리라는 생각에서 이뤄진 추측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군국주의와 종교적 파시즘 세력의 신념을 이 사진들이 강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이들에 맞서 스페인 공화국을 지켜내는 데 우리가 더 기여할 수 있을까가 아니었던가? - P25

언제 일어나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무력은 언제어떤 상황에서도 잘못된 것이라고, 시몬느 베이유가 전쟁을 다룬탁월한 에세이 <일리아드>, 또는 무력의 시(1940)에서 단언했듯이 폭력은 폭력의 피해자를 사물로 뒤바꿔 버리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전쟁이 파국을 가져온다는주장 자체는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아니, 당면상황에서 무장투쟁 이외의 그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도리어 폭력이야말로 폭력에 종속된 사람들을 순교자나 영웅으로 드높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손택이 인용한 구절은 원래 "폭력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숨을 쉬는 생생한 인간에서 사물로 변형되어 버린다" 이다] - P30

텔레비전 카메라가 매일같이 보여준 최초의 전쟁, 즉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머나먼곳을 상세히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서 죽음과 파괴의 모습이 가정의 코앞에까지 찾아들어 왔다. 그때 이래로, 발생할때마다 곧바로 필름에 담겨지게 된 각종 전투와 대량 학살은 정기적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올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작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쏟아져들어오는 극적인 사건들에 노출된 시청자들이 어떤 분쟁을 중요하다고 의식하도록 만들려면, 이제는 그 분쟁을 다룬 단편적인 필름들을 일상적으로 확산시키고 또 확산시켜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들이 가져다 주는 충격을 통해서 전쟁을 이해한다. - P43

쉴새없이 밀려드는 (텔레비전, 스트리밍 비디오, 영화의) 이미지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는 수백 장의 사진들을 마음 속에 담고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는스페인 내전 당시에 찍힌 가장 유명한 사진을 모두 알고 있다. 어느 공화군 병사가 적군의 총알에 명중된 바로 그 순간, 로버트 카파의 카메라가 "쏜" 바로 그 사진 말이다. 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거칠기 그지없는 이 흑백의 이미지, 소매 걷힌 하얀 윗옷을 입은 남자가 자신이 쥐고 있던 장총을 던져버리려는 듯이 오른 팔을 뒤로 젖힌 채 산자락 뒤쪽으로 쓰러지는이미지, 자신의 그림자 위로 고꾸라져 곧 죽을 것 같은 이미지를 마음 속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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