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고쿠엔틴이 세리나에게 전화를 걸어 타이니가 일을 안 하겠다고 한다고 알리자 셰리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녀석 자리에 다른 사람을 넣으면 되지 뭐." 일할 사람은 그런 식으로 찾고 또 대체할 수도있었다. 크랙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셰리나의 남동생도 있었고, 몇시간을 일해서 맥주 값만 벌어도 행복한, 잇몸이 드러나는 얼굴의 알코올중독자인 쿠엔틴의 삼촌 번도 있었다. 세입자들은 종종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해왔다. 심지어는 외다리 리키마저 연락을 하곤 했다.
게다가 세리나에게는 "땅콩 한 접시면 일하겠다"라며 달려드는 약쟁이들 한 무더기가 항시 대기 중이었다(그녀는 이들을 "땜빵용 크랙중독자들"이라고 불렀다). 쿠엔틴은 급할 때는 길거리에서 일할 사람을 바로 모으기도 했다. 빈민가에서는 실직한 남자들을 많이 모으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다. 셰리나와 쿠엔틴은 연장과 자재, 이동 수단을제공했다. 일꾼들에게는 건당이나 일당으로 돈을 줬다. 액수는 보통일에 따라 시급 6달러에서 10달러 사이였다. 셰리나는 한번은 이렇게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액수가 많든 적든 간에 돈은 돈이야.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일을 할 거야. 액수가 적더라도 말야."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흑인 남성들의 실업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공식 노동시장이 아닌 곳에서나마 정기적으로 일을 했다. - P197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곤궁한 가정들은 종종 확장된 친족 네트워크에 의지해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곤 했다. 인류학자 캐롤 스택Caral Stack 은 《모두가 우리의 피붙이 All Our Kin》에서 가난한 흑인 가정들은 "의지할 수 있는 많은 피붙이와 친구들로 구성된 가정이라는망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물망에 엮인 사람들은 하루하루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했다. 이는 이런 가정들이 빈곤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빚을 지지 않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사회 변화(크랙의 창궐, 흑인 중산층의 등장, 그 가운데서도 특히 투옥 붐)는 가난한 동네에서 가정의 안전망을 해체시켰다. 친척과 함께 사는 엄마들보다는 혼자 살거나 친척이 아닌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엄마들에게 더 많은 수당을줌으로써 ‘친족 의존성‘을 제한하고자 했던 부양아동 가족부조 같은국가 정책들도 같은 기능을 했다.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