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역사가 윌리엄 레키 W. E. H. Lecky는 두 명의 검투사들 간의싸움에서 출발한 로마 투기회의 발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침내 단순한 격투에 대해서는 흥미가 사라졌고, 시들어 가는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수없이 다양한 잔혹 행위들이 고안되었다. 어떤 경우는 곰과 황소가 함께 사슬에 묶여 모래 위에서 격렬하게 뒹굴면서 싸움을 벌인다. 또다른 경우는 뜨겁게 달아오른 쇠나 뜨거운 송진이 끝에 달린 투창 때문에 화가 나있는 황소들에게 야수의 가죽을 입은 죄인들이 던져진다. 칼리굴라 황제 치하에서는 400마리의 곰이 하루에 죽어 나갔다••• 네로 치하에서는400마리의 호랑이들이 황소나 코끼리 등과 싸움을 벌였다. 티투스Titus가 콜로세움을 봉헌한 날에는 단 하루에 5,000마리의 동물이 죽어 나갔다. 트라야누스 Trajan 치하에서는 123일 동안 연속해서 투기회가 벌어졌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코뿔소, 하마, 기린, 황소, 사슴, 심지어 악어와 뱀들마저도 관중에게 신선함을 주기 위해 동원되었다. 인간에게도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이 주어졌다••• 트라야누스 시대의 투기회에서는 무려 1만 명의 남성들이싸움을 벌였다. 네로는 송진 묻은 옷을 입힌 기독교인들을 불살라서 자신의정원을 밤새 밝혔다. 도미티아누스Domitian 치하에서는 허약한 난쟁이들로이루어진 군대가 싸움을 벌여야 했다••• 피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에, 왕자는 곡식을 제대로 배분하지 않았을 경우보다도 투기회를 제대로 개최하지 않았을 경우에 더욱 원성을 샀다.  - P325

기독교의 영향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대비해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는 인간 종이 유일무이하다는 생각을 로마에 전파했다. 이러한 생각은 유대의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영원불멸한 영혼을 중시했으며, 이 때문에 인간 종의 차별성은 기독교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인간은 이 지상에 사는 모든존재 중에서 유일하게 육신의 죽음 이후의 삶으로 나아갈 운명을 타고났다. 이러한 입장과 더불어 모든 인간의 생명이 신성하다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관념이 도입되었다. - P326

아퀴나스는 ‘이성이 없는 동물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가 그 자체로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퀴나스의 도덕적 도식 속에는 이러한 종류의 악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죄의 유형을 신에 대한죄, 자신에 대한 죄, 그리고 이웃에 대한 죄로만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다시 인간 아닌 존재들은 도덕적 고려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동물들에 대한 죄라는 범주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간 아닌 존재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우가 설령 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존재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자비로움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아퀴나스는 그 가능성 또한 분명하게 배제한다. 그에따르면 자애는 세 가지 이유로 비이성적인 생물에게까지 확장되지 않는다. 우선 비이성적인 존재들은 "좀 더 적절하게 말한다면, 선(good)을소유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선은 이성적 생물만이 가질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그러한 존재들에게 동료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자애란 영원한 행복을 공유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있다. 그런데 이성을 갖지 못한 생물은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성을 갖지 못한 존재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우리가 그들을 어떤 목적에 도움이 된다고 파악하는 경우에 국한될 것이다." 즉, ‘신의 영광과 인간이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들을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칠면조가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그 동물에게 애정을 담아 먹을거리를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칠면조를 누군가의 성탄절 저녁 식사로 생각할 때 이는 가능해진다.  - P332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자비의 법칙에 따라이러한 동물들을 관대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당대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식적인 감정을 요약한 것이다. 실제로 관대한 사용(gentle usage)‘은 이 시기에 확산되어 나가기 시작한태도를 적절히 압축하고 있는 구절이다. 우리는 동물을 사용할 권리가있다. 하지만 너그러이 사용해야 한다. 당대에는 세련됨과 예의를 함양하고, 자비를 증진하면서 잔혹성을 줄이려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동물들은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인간과 더불어 혜택을 받게 되었다.
18세기는 인간이 ‘자연‘을 재발견한 시대이기도 하다. 숲을 벌거벗은 채로 걸어 다니며, 과일과 나무 열매를 주워 먹는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말하는 고매한 야만인은 자연에 대한 이와 같은 이상화의 정점을 이룬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야수‘들이 우리의 혈연이라는 느낌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하지만이러한 혈연이라는 느낌은 결코 평등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낮게 평가해도 인간은 동물 가족의 자애로운 아버지 역할을 맡고 있는것으로 파악되었다.
인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종교적 관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관념은 더욱 자애로우면서도 새로운 태도와 뒤섞이게 되었다. 예컨대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는 "열등한 피조물이 우리의 힘에 굴복하였지만". 우리는 "그들을 잘못 관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완전히 의식이 있는 개를 해부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 P345

동물 학대 금지에 관한 최초의, 그리고 최소한의 법령이 통과된 지몇 년이 지난 후, 찰스 다윈 Charles Darwin은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만한 인간은 스스로를 위대한 피조물이라 생각하며, 신의 중재를 맡을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나는 인간을 동물에서 유래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더욱 조심스럽고 진실되다고 믿는다. "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공개하기에 충분할 만큼 증거를 수집하였다고 생각하기까지는 또 다른 20년이 흘러야 했다. 그런데 1859년에 출간한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 에서마저도 다윈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를 말하는 자신의 이론이 인간에게 얼마만큼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저작이 ‘인간의 기원과 역사‘를 밝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실상 다윈은 이미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의 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할 기록들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그는 이러한 자료를 출간한다는 것이 "자신의 견해를 반대하는 편견을 가중시킬 따름"이라고 판단했다. 1871년에 이르러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수용하자. 그제야 비로소 다윈은 인간의 유래 The Descent of Man를 출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종의 기원에 썼던 한 구절에 내재된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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