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삼십칠 분마다 한 명씩 자살한다고 한다. 어느 날엔가 함께 그런 뉴스를 보다가 삼이 내게 혹시 너도 자살 같은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때 배스킨라빈스에서 하프갤런 한 통을 사와서 마구 퍼먹어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죽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못 먹잖아, ‘엄마는 외계인도, 하고 대충 말했다. 아이스크림에 그런 이상한 이름을 붙인 회사를 이해할 수 없어하던 삼은 내 대답을 듣고서 그런 사소한 이유로 살고싶은 거냐고 물었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도 살고 싶은 게 사람이아니냐고 나는 대답했다. 죽고 싶은 이유를 수십 가지나 가지고서도, 자기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밤마다 엉엉 울면서도, 아침이면 일어나 허기를 느끼고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포만해지는 게 사람 아니냐고. 그러자 삼이 내 얼굴을 골똘히 보다가 눈감고 아, 해, 하고 말해서 눈을 감고 아 했더니 내 입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한 숟갈 넣어주었다. 이 달달함때문에 살고 싶은 거냐고 물어서 차가운 단맛을 침으로 녹이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는 맹물을 들이켜면서도 살아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자살은 아니었다. 이것들은 모두 아주 오래된 일이다. - P220
죽은 지 이 일째 되는 아침에는 누군가 나를 깨우러 와줬으면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나는 혼자 살고 있었다. 동이 터올 때부터 요란스레 들리던 새소리가 언제인지 모르게 그쳐 있다. 남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또 삼십여 분 뒤에 비슷한 소리가 한번 더 들린다. 골목을 가로지르는 구두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오토바이 소리와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 소리들을 제외하면 이 거리의 주택가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낮 동안은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 바람이 세게 불어 방충망이 덜컹거릴 뿐이다. 저녁이면귀가한 사람들로 다시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티브이 소리, 압력밥솥 소리,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 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연달아서 한 번, 두번, 세 번, 네번, 다섯번・・・・・・ 조금 사이를 두고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싶다. 내가 죽은지도 모르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저 사람은 누굴까. 셋째 날 아침에도 아직 마음의 여유가 있다. 누구라도 곧 나를찾아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밤동안은 가로등 불빛이 내 방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이좋다. 사위가 서서히 어두워지는 와중에 막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나의 그런 애착을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 P221
동그랗고 노란 그 빛은 어둠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는 것 같았다. 넷째 날엔 어디서 빵을 굽는지 구수한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나간다. 죽기 전에는 별로 맡아본 적 없는 냄새다. 다섯째 날엔 혀끝에서 쇠맛이 난다. 공기중에 그런 맛이 떠도는 것 같다. 여섯째 날엔 기분 나쁠 만큼 정교하게 생긴 작은 벌레가 몸에서 마구솟아나온다.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 반복해 생각한다. 혀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굴리면서 그것들이 완전히 녹아들 때까지. 일곱째날엔 구수한 빵 냄새는 모두 사라지고 다른 불쾌한 것들만 남는다. 이건 내 냄새일까. 그리고 나는 날짜를 세는 걸 포기한다. 나를 발견한 사람이 어쩌면 삼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딘가 전화를 건 다음에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이제 달리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라는 듯 울기 시작한다. 딱딱한 것이 녹아 뜨겁게 흘러내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을 의탁하고 싶어질 때, 나였던 것은 산산이흩어지고 만다. 그래도 그때에는 마음 둘 곳이 몇 있어서 사람들은 잘 살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떠올렸다. - P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