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판 서문

2008년 수천만의 미국인들은 TV 저녁 뉴스에서 너무나 체력이 약해져서 걷지 못하는 소를 도축하여 식육으로 가공하는 죽음의 도축장 쪽으로 몰아가기 위해 발길로 차고, 전류가 흐르는 봉으로 전기 충격을 주고, 막대기로 눈을 찌르고, 지게차로 이리저리 밀고 다니는 모습을 촬영한 비밀 비디오 영상을 두려움과 의혹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 비디오영상은 캘리포니아 주 치노 Chine 소재 웨스트랜드/홀마크 도축장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도축장은 최신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규모 시설로, 전국학교급식프로그램(National School Lunch Program)에 식육을 제공하는 주요공급원이며, 후미진 농촌 지역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에서 불과50여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비디오 방영을 계기로미국 역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 걷지 못하는 쇠고기를 먹을 경우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 P6

1975년판 서문

이 책은 인간 아닌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폭정에 관한 책이다. 이러한 폭정은 이제껏 상당한 고통과 괴로움을 야기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과 괴로움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폭정의 결과와 견줄 수 있는것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수세기 동안의 폭정의 결과로 야기된 고통과괴로움 밖에 없다. 이러한 폭정에 반대하는 투쟁은 최근 수년 동안의 어떤 도덕적 · 사회적 문제에 대한 투쟁 못지않게 중요하다. - P14

이 책은 애완동물에 대해 쓴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사랑이 단순히 고양이를 어루만져 준다거나, 정원의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읽으라고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억압과 착취가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에서건 이를 종식시키고자 하는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익에 대한 동등한 고려라는 기본적인 도덕 원리를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 종 구성원에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와 같은 문제들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동물 애호가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들 사이에서 적용되는 도덕 규준을 다른 동물들에게 확장시킬 용의가 조금도 없음을보여 주는 것이다. 자신의 반대자를 ‘깜둥이 애호가(nigger-lovers)‘라고 욕하려는 인종차별주의자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람도 "처우를 제대로 받지못한 소수 인종들의 평등에 관심을 가지려면 그러한 소수 인종들을 애호해야 한다거나, 또는 그들을 예뻐서 꽉 껴안고 싶은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동물의 조건을 개선하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애호해야 한다"고 가정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 P16

동물 해방의 전망과 관련해 더욱 중요한 사실은 억압을 가하는 집단이거의 대부분 직접적으로 억압에 개입되어 있으며, 자신들이 억압을 통해 혜택을 누릴 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에 대한 억압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마치 북부의 백인이 남부의 노예제도를 초연한 입장에서 논의하듯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도축된 동물들의 고기를 매일같이 먹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리고 고기 외에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최소한 이익 집단이다. 그들은 현재와 같이 인간 아닌 동물들의 이익을 무시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된다(혹은 최소한 그들은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설득은 더욱 어렵게 된다. 북부의 노예 폐지론자들이 활용했고,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받아들이는 논거에 설득될 남부의 노예 소유자들은 과연 얼마니될까? 아마 몇 명은 설득되었겠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P20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평등이라는 기본 원리를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양 집단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양 집단이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함을 뜻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지의 여부는 양 집단 구성원이 어떤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에따라 달라질 것이다. 평등이라는 기본 원리는 평등한 또는 동일한 처우(treatment)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한 원리는 단지 평등하게 배려하길요구할 따름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들을 평등하게 배려한다는 것은 그들을 서로 다르게 처우하며, 그들이 서로 다른 권리를 갖는다는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 P29

평등에 관한 주장이지능, 도덕적 재질, 체력 또는 그와 유사한 사실의 문제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평등은 도덕적 이념이지 사실에관한 단언이 아니다(Equality is moral idea, not assertion of fact). 두 사람간의 실질적인 능력의 차이는 그들의 필요와 이익에 대한 차등적인 배려를 정당화할 논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이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prescription)이다. - P33

문제는 그들에게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는지, 또는 대화를 나눌 능력이 있는지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수 있는가이다. 

위의 구절에서 벤담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유무‘를 어떤 존재가 평등한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적인 특징으로 꼽고 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좀 더 엄밀하게 말해 고통그리고/또는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은 언어 능력 또는 고등수학을 풀 수 있는 능력과는 다른 특징이다. 여기서 벤담의 언급은 어떤존재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으려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된 특징을 선택했다고 말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벤담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생물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무단으로 이익을 배제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interests)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는다는 조건은 이익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 P37

한편 서로 다른 종간의 고통의 비교가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동물과 인간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 평등의 원리가 아무런 지침이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서로 다른 종 구성원들의 고통을 정확히 비교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성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동물은 커다란 영향을 받지만 인간의 이익이 크게손상되는 일은 없을 것임이 어느 정도 확실한 경우에만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을 방지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식사를 비롯해 가축 사육 방식, 여러 과학 분야에서의 실험 절차, 야생 동물에 대한 우리의접근 방식과 사냥 등에서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동물을 장식품과 모피로 사용하거나 서커스, 로데오, 그리고 동물원 등 오락 분야에서 활용하는 경우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동물들은 상당한 양의 고통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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