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오래오래 한가롭게 수영을 한다. 힘이다 빠져버리기 전에 헤엄쳐 해변으로 돌아온다. 모래사장에는 우리가 벗어놓은 옷들이 놓여 있다. 우리는 머리끝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을 닦고 옷을 챙겨 입는다. 그리고 잠깐 그대로 따끈한 모래에 맨발을 파묻고 서서 이다음 여름에는 무얼 할지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실현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당장은 모든 게 실현될 것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 때문에, 그에대해 떠들어대는 일은 희한한 기쁨을 준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모래바람에 파묻히고 없다. 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가 모아둔 방식으로는 더이상 없다. 우리는 커다란 비치 타월을 함께 뒤집어쓰고 해변을 떠난다.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날 쪽으로. - P38

"할말 있어?"
내가 묻자 반장이 장난스럽게 운전대를 흔들던 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진짜 용서 안 해줄 거야?"
이제 와서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묻고 싶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구하지 않을 용서 아니었냐고. 내가 용서를 해준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느냐고. 나는 그런 것들을 묻지 않았다. 반장이 어떤 대답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렇게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보니 원하는 답을 해주기가 싫어졌다. 어릴때에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마음만 받았던 기억은 도무지 지워지지가 않았다. 상처가 됐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안 해줄래. 그러니까 그냥 계속 싫어해."
반장의 표정은 빠르게 일그러졌다. 어쩌면 나도 그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친, 진짜."
반장은 짜증난다는 듯이 거칠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서는 있는 힘껏 문을 쾅 닫고 떠났다. - P68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그곳에서있었던 모든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날 먹은 굴 말이야. 요리법 좀 알려줄래?
내가 보낸 카톡을 확인한 반장은 다른 말은 없이 요리법이 적힌블로그를 캡처해 보내주었다. 고마워, 라고 인사했지만 그 옆의 ‘1‘은 서울에 가까워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차단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답이 왔다.
-또 먹으러 와.
뜻밖이었다. 그 문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이어서 메시지가 왔다.
- 용서는 안 해줘도 되니까 그냥 와.
그건 또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반장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커튼으로 차창의 습기를 닦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눈발이 날리고 있어 한참이나 창에 코를 박고 있었다. 붕붕거리며 바닷속을 떠돈다는 굴 유생들도 저런 모양일까.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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