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예술이 정신적 발달의 선천성 규칙들의 조종을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통적 역사뿐 아니라 유전적 진화의 최종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즉 유전적 지침 (genetic guide)이 단순히 부산물(부수 현상)이었을까, 아니면 생존과 번식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던 적응(adaptation)이었을까? 그런데 만일 그것이 적응이었다면 정확히 어떤 측면에서 어떤 이득이 되었단 말인가? - P388

지성은 융통성 있는 반응들을 이끌어 냈으며 현재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나 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하는 뇌는 일반 지성 (general intelligence)만으로 전환될 수는 없었다. 뇌는 만능 컴퓨터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진화가 진행되는 동안 생존과 번식의 동물적 본능은 인간 본성의 후성적 알고리듬(epigeneticalgorithm)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리고 언어와 성적 행동을 비롯한 정신적 발달 과정들이 빠르게 획득되기 위해서는 이 선천성 프로그램들이 제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만일 그 알고리듬들이 제거되었다면 그 좋은 멸종에 직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일반화된 학습에 의해 경험을 추려내기에 한 개체의 삶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알고리듬들이 날림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적절하게 작동했지만 아주 뛰어나게 잘 작동하지는 못했다. 자연선택의 느린 속도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들이 낡은 것들을 대체하는 데에는 수만 세대가 걸린다.
인간의 유전은 고도의 지성이 열어 보인 새롭고 우연한 수많은 가능성들에 대처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알고리듬이 형성될 수는있었으나 모든 가능한 사건들에 대해 자동적 · 최적으로 반응하기에 충분할 만큼 정교하지도 수적으로 많지도 않았다.
이런 간극을 메운 것이 예술이다. 초창기 인간들은 마술을 통해 환경의 풍요로움과 연대의 힘 그리고 생존과 번식에 가장 중요했던 여타 힘들을 표현하고 통제하고자 예술을 창안했다. 이런 힘들은 새롭게 모사된(simulated) 실재 속에서 의례화되고 표현될 수 있는데 예술은 이를 위한 수단이었다. 예술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감정의 안내를 받는 정신 발달의 후성 규칙들에 충실함으로써 일관성을 끌어냈다. 그것은 가장 호소력 있는 언어, 이미지, 리듬 등을 선택함으로써 그 규칙들을 따랐다.  - P389

그렇다면 실제 세계에서 초정상 반응들이 왜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실험자가 만든 거대하고 기괴한 형태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동물들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는 하나의 후성 규칙을 무난히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또는 가장 밝은, 또는 가장 잘 보이게이동하는) 개체를 잡아라." 모터 소리를 내며 펄럭이는 밝은 색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곤충이 암컷 표범나비일 리 없다. 그런 것은 유충기를 통과하기도 선에 굶어죽을 것이며 더군다나 유라시아 삼림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큰 눈과 가냘픈 용모를 지닌 여성들도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혹독한 출산 과정을 견디는 데 있어서 평균적인 여성보다는 체력 면에서 덜 강인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젊음과 처녀성의 물리적 단서와 긴 번식기 전망을 널리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그 특성들의 적응적 중요성이기도 하다. - P400

하지만 지식의 거대 간격들이 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문자를 쓰는 세계에서 누적적으로 발달한 과학의 힘 덕분이다. 사람들은 배우고는 곧 잊어버리고 죽는다. 그들이 만든 가장 강력한 제도들도 언젠가는 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지식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넘어가면서 전 지구적으로 계속해서 팽창한다. 훈련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 지식의 일부분을 검출하고 증대시킬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칼라하리 사막과 같은 생태계 속의 모든 생물들이 결국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과학적 학명들이 붙여질 것이다.
먹이사슬 속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도 발견될 것이고 그들에 대한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가 세포와 분자 수준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밝혀질 것이며 동물의 본능 행동이 신경 회로와 신경 전달 물질 그리고 이온 교환 수준으로 환원될 것이다. 만일 생물학의 역사가 하나의 지침이라면 이 모든 사실들은 통섭적인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이 설명들은 공간적으로는 분자로부터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적으로는 100만분의 1초 단위에서 1,000년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 P407

내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들추는 이유는 현재의 신앙들에 대해 비난을 퍼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신앙들의 물질적 기원과 또 그것들이 지지하는 윤리적 체계의 물질적 기원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위대한 문명들은 정복을 통해 확장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문명들을 정당화하는 종교는 중요한 수혜자가 되었다.
국가가 후원하는 종교의 성원이 된다는 것은 분명 여러 심리학적 차윈에서 늘 대단히 만족스러운 일이었으며, 영적인 지혜는 정복의 시대에 준수되던 야만적인 교의들을 좀 더 완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든 주요 종교들은 여러 문화들 사이에서 벌어진 다윈주의적 투쟁에서 이긴 승자이며, 그 어떤 종교도 자신의 경쟁자를 용인하면서 번성하지는 않았다.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항상 정복 국가의 후원을 받아야 가능했다. - P422

내가 볼 때 헌신의 유형 중 가장 위험한 것은 기독교 특유의 신앙심이다. 즉 나는 이 세계에 속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제2의 삶을 기다리며 고통ㅡ특히 타인들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있게 해 주고, 자연환경은 다 써 버려도 된다는 망상을 심어 주며,
신앙의 적들은 잔인하게 다뤄도 좋다고 토닥여 주고, 자살에 가까운 순교를 칭송하게 만든다. - P424

그러나 이런 경외심을 갖는다고 해서 소중한 자아가 증발되거나인류의 참된 본성이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힘은 그 어떤 표지든 간에 진리와 지식과 인격 속에 존재한다. 유대·기독교의 신자들은 성경에서 "교만이사망을 부른다."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러나 나는 이것에 동의하지않는다. 그것은 거꾸로 되어야 옳다. 즉 파멸이 자긍심을 부른다. 경험론은 이 공식으로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경험론은 우리가 신의영광을 증거하기 위해 신이 피조물의 정점으로서 우주의 중심에 놓은 특별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현기증 나는 이론을 파괴했다.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신에게 진 빚을 거의 갚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동료 인간들에게나 우리의 모든 희망을 좌우하고 있는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더 겸손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어떤 신들이 있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이런 발견을해 내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우리 힘만으로 성취해 내기 시작한 것에 대해 찬탄해 마지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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