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서문 설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narro, Ergo Sum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그때그때 편의대로 만든 것일 뿐이다.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관통하거나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울타리 안에 앉아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 - P7
통합생물학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개념을 추구한다. 하나는 생물학이란 모름지기 궁극적으로 생명의 다양성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생물계가 본래 위계 구조로 이뤄져 있듯이 그를연구하는 단위도 같은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개념이다. 그동안 물리학과 화학을 기저에 두고 생화학, 세포학, 유전학, 생리학, 생태학 등 수평적으로 나열되어 있던 생물학 분야들을 수직적으로 쌓아올린 것이 바로 통합생물학이다. 이 같은 변혁에 이론적인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이다. 하지만 그의 시계(視界)는 생물학의 범주 안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그는 생물학과 심리학이 인지신경과학 또는 행동신경과학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본다. 그는 또 21세기 학문은 크게자연과학과 창조적 예술을 기본으로 하는 인문학으로 양분될 것으로내다본다. 사회과학은 이미 시작된 세분화 과정을 계속하며 궁극적으로는 상당 부분 생물학과 연계되거나 큰 의미의 인문학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면서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려는 인간지성의 위대한 과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 P9
그러나 환원주의와 통섭은 태생적으로 상반되는 개념이다. 환원주의는 통섭적 연구를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일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통섭적 연구가 다 환원주의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강의 유비 대신 ‘나무의 유비‘를 제안한다. 나무는 줄기를 가운데 두고 위로는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로 분화되어 있고 땅 밑에도 역시 많은 뿌리로 갈라져 있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수많은 가지들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관찰하고 기술하며 분류하는 학문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측정하고 이론화하는 학문들도 있다. 땅 밑에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않는 뿌리들도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분석 과학 분야들이 여기에속할 것이다. 나는 뿌리와 가지를 연결하는 줄기가 통섭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줄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물관과 체관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 아니다. 나는 통섭이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영향적이기를 바란다. 통섭은 분석과 종합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윌슨이 그리고자 한 통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환원주의의 흔적이 군데군데 그림을 흐릿하게하고 있다. - P17
1장 이오니아의 마법
나는 내가 통합 학문의 꿈에 사로잡혀 있던 때를 잘 기억한다. 앨라배마 대학교 2학년에 들어가기 위해 모빌에서 터스칼루사로 옮겼던 1947년의 어느 이른 가을 날, 그러니까 18살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물불을 못 가리는 애송이 생물학도였지만 열정 하나 만큼은 대단했다. 고향의 산천을 혼자 돌아다니며 딴에는 자연사라는 과목을 혼자 이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과학을 개미, 개구리 그리고 뱀에대한 연구쯤으로 생각했다. (아직도 내 가슴 속에서는 그렇다.) 그 과학은 나를 야외에 머무르게 만든 멋진 것이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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