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종교적‘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이라는 표현은 대개 신성함, 근원적 깊이, 존재 자체……… 이런 것들을 망라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쓰이죠. 하지만 ‘종교‘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특정 전통으로 구체화된 제도 종교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오해를 사기 십상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마치 종교적 신앙을 고백한 것처럼 오해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하지만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아인슈타인은 다만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향해, 넓은 의미에서 보면 자신도어느 종교인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종교적일 수 있다고 말한것뿐입니다. 아마 아인슈타인은 ‘종교적‘이라는 표현에 그리 만족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인간과 과학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자연의위대한 신비는 ‘종교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다 담아내기 힘들 정도로 깊기 때문이죠. - P180

제 생각에 그 역사적 맥락이란 곧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어디까지나 ‘서구 근대 과학‘의 수입품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같은비서구 사회에서 근대 과학은 처음부터 서구의 팽창과 궤적을 같이해 왔습니다. 근대 과학은 비서구 세계가 서구적 근대성 모형에 따라 대대적인 근대화와 서구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도입된 것이죠. 물론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과학의 보편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을 둘러싼 담론들이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는 점도 역시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의 경우 종교와 과학 논의에서 유독 기독교가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은 기독교와 근대 과학이 서구의 근대성과 더불어 세계로 확장되어 온 역사적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⅕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형성되던 근대라는 무대에서가장 유리한 입지를 선점한 것은 바로 서구 종교인 기독교였기 때문이죠. - P193

다만 한 가지만 짚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가만히 보시면 제가 제시한 기독교 이외 종교들이 과학을 대하는 유형들에서 오늘날의 종교와 과학 양쪽 논객들이 제시하는 관계 유형과 비교해 특정한 관계유형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 등의 차이가 보이실 겁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와과학의 관계 유형을 정리한 대표적 학자인 이언 바버는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의 네 가지 관계 유형을 제시하는데요. 제가 제시한 기독교 이외 종교들의 과학과의 관계 유형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적극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대화나 통합 유형이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대화와 통합이란 충분히 긴 시간동안 많은 논의가 축적된 후에야 비로소 시도될 수 있는 것인데, 서구에서 오래 진행되어 온 논의가 있었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비교적충분히 준비된 토대 위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다른 종교들은 대개 모든 논의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논의가 이제야막 싹트던 단계에 불과했기에 대화와 통합은 아직 시기상조였던 셈이죠. 물론 오늘날의 종교, 특히 불교 같은 종교는 과학과의 만남에아주 적극적입니다. 불교도들은 과학과의 대화와 통합을 추구하는다양한 논의를 국내외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불교 등 일부 종교의 일이고, 또 비교적 최근의 일일 뿐, 적어도 근대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종교들에서는 대화와 통합을 위한 시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 P198

두 분 선생님은 2006년에 출간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데닛의 ‘주문 깨기』, 그리고 윌슨의 『생명의 편지」까지 보셨으니 이들의 대화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최근 1~2년은 진화론의 대가들이 저마다 종교에 대한 책들을 출간했던 아주 흥미로운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종교의 기원 · 유지 · 기능에 대해 모두 생각이 조금씩다르다는 점일 겁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이 차이 중 어떤 것은 아주미묘해서 전문가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윌슨이 데닛의 말을 이렇게 받습니다. "저는 리처드(도킨스), 당신(테닛), 그리고 나의 차이를 이렇게 규정하고 싶소. 리처드는 종교와전쟁을 벌이는 전사이고, 당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를 재고하게만드는 영리한 전략가이며, 나는 생태 문제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풀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실용주의자이죠." 이런 성격 규정이 맘에 들었는지 데닛이 맞장구를 치더군요. "이 얼마나 절묘한 분업입니까!" - P232

 휘그적 역사 해석은 원래 영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역사관으로, 영국의 역사를 자유를 위한 영국인들의 위대한 투쟁사로 그린다. 본디 자유로운 공동체였던 영국이 노르만족의 정복 이후 그 자유를 잃었다가 17~19세기의 혁명과 투쟁과 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 모범적인 의회 민주주의를 실현한 자유 국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형성된 과학적 사고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몰락한 후, 1000년 후 과학 혁명과 과학자들의 투쟁과 연구를 통해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한 현대 과학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칼 세이건과 에드워드 윌슨 같은 일부 과학자들의 관점 역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휘그적 역사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대표 저술인 ‘코스모스』나 『통섭』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P249

서구 사회에서 근대 이전까지 과학은 자율성을 지녔지만, 종속되어 있었죠. 당시에는 오늘처럼 과학(Science)이란 이름에 대응하는 지적 분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문적 방범도 오늘날의 과학적 방법과도 달랐습니다. 또한 비록 의학이나 수학과 같은 근대 과학의 하위 분야에 해당하는 분야가 몇 개 있었지만, 물리학, 화학, 지질학, 생물학에 해당하는 분야로 분화되지도않았죠. 모두 ‘자연 철학 분야에 더 넓게는 철학에 속해 있었습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위대한 과학자라고 칭송하는 아이작 뉴턴역시 자신을 자연 철학자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의 대표작인 ‘프린키피아』의 원제 역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Principia Mathematica)』였죠.
기독교가 지배 종교였던 서구에서 자연 철학은 오랫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기독교 사제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교인들에게 자연에 대한 탐구는, 즉 오늘날의 과학자들이하고 있는 작업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탐구가 신이 만든 세계를 이해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죠.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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