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위험을 정복한 진보는 이상하리만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 장의 초고를 읽은 독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진보를 다룬 책에 이런 내용이 왜들어가는지 의아해 했다.) 최악의 전쟁을 제외하면 사고는 다른 어떤 요인보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만, 도덕의 렌즈를 통해 사고를 바라보는일은 드물다. 우리는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신나게 속도를 내며 자기 소유의 차를 모는 편리함이, 과연 매년 100만여 명의 목숨을 빼앗고 수천만 명에게 상해를 입혀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연중에 그런 괴물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 다만 질문이 그런 형식으로 제기된적이 없을 뿐이다." 간혹 위험이 도덕적 교화의 대상이 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이 벌어질 때도 있다. 재난이 뉴스가 되고 재난을 일으킨 악당(탐욕스러운 공장주나 태만한 공무원)을 쉽게 지목할 수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내 사고는 다시 각자의 운에 달린 일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가 희생자가 되지 않는 이상) 사고를 일종의 잔혹 행위로 보지 않을뿐더러, 안전 측면에서 거둔 성과를 도덕적 승리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나마 그런 성과를 인지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리고 신체적장애, 손상, 고통을 대폭 경감시킨 그 같은 성과는 충분히 감사할 만한 일이자 설명할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 P295
다른 위험 요인에 비해 피해가 미미한 편임에도 테러리즘이 거대한 혼란과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테러리즘이 바로 그런 효과를 겨냥하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테러리즘은 언론의 도달 범위가 넓어진 데 따른 부산물이다. 집단이나 개인은 조금이나마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가장 확실한 수단을 사용한다. 그들의 표적은 무고한 사람들, 특히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언론사는 미끼를 물고 잔혹한 범죄를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 뒤에는 가용성 휴리스틱이 작동하고, 사람들은 위험의 크기와 무관하게 공포에 사로잡힌다. 끔찍한 사건은 눈에 띄기 쉽다는 사실만 테러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감정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사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비극에 더 깊이 몰입한다. - P303
무장 단체에 속한 다른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대의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힘을 사용해서 정부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켜서 새로운 동조자를 모집하거나 무질서 상태에 빠진 지역을 착취하기 위해, 혹은 정부가 시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인상을 확산시켜 정부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른다. 그들이 "미국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선 실질적으로 그들의 전략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유발 노아 하라리 (Yuval Noah Harari, 1976년~)는 테러리즘이 적군의 강한 반격 능력에 손상을 입히고자 하는 군사 행동과는 정반대라고 지적한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공습은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파견할 수 있는 영격(迎擊) 함대를 궤멸시켰다. 일본이 군사 행동을 벌이는 대신 테러 사건을 일으켜, 이를테면 미국을 도발한답시고 반격할 수 있는 해군력은 그대로 놔둔 채 여객선을 노려 격침시켰다면 그만한 미친 짓도 없었을 것이다. 열세에 놓인 테러리스트가 노리는 것은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극적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라리는 지적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9.11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알카에다가 펜타곤 - 실제로그들의 사령부를 일부 파괴하고 지휘관들과 분석가들의 목숨을 빼앗은 군사 시설을 공격했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의 토템 기둥인 세계 무역 센터를 공격해서 중개인, 회계사, 그밖의 민간인들을 죽였다는것이다. - P305
사실 대중의 인식에 테러리즘이 부상한 것은 세계가 얼마나 위험해졌는지를 나타내는 징후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과학자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 1940년~)는 위협의 목록에서 테러리즘이 최상단에 자리한 것은 "어느 정도는 놀랄 만큼 긍정적인 안보 환경에서 연유한다."라고 논평한다."국가간 전쟁만 드물어진 것이 아니다. 국내를 무대로 정치적 폭력을 활용하는 것도 줄어들었다. 중세에는 사회의 모든 영역 - 귀족, 조합, 마을, 심지어 교회와 수도원 - 이 사설 군사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했다고 하라리는 지적한다. "만약 1150년에 예루살렘에서 소수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한 줌의 시민을 살해하면서 십자군에게 성지를 떠나라고 요구했다면, 공포가 아니라 조롱 섞인 반응이 돌아왔을 것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면 적어도 요새화된 성을 한두 곳 정도는 점거해야 했을 것이다." 무력의 독점에 성공한 현대 국가는 국경 안쪽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 발생률을 떨어뜨렸고, 자연히 테러리즘이 들어설 자리가 마련되었다. - P306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사람들(특히 총을 쥔 사람들의 생각이 신권 정치, 왕권신수설, 식민주의적보호주의, 프롤레타리아(실제로는, 그 ‘혁명적 전위의) 독재, 혹은 인민의 뜻이직접 구현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전제적 통치 같은 대안들보다 민주주의가 더 낫다는 지점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 서양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나라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 정권이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폭력적인 혁명을 통해 탄생한 나라(중국, 쿠바, 이란, 북한, 베트남 등)에서 뿌리내리기 어려운 이유를 비롯해 민주화의 연대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패턴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거꾸로, 사람들이 민주주의 국가가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민주주의 사상이 널리 전파되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수도증가할 것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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