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런데 여기 트릭이 하나 있습니다. 머릿속에 있다고 모든 것들이 창의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머릿속에 있으되, 327번, 128번처럼 아주 정확한 셀에 새겨져 있어야 하는 겁니다. 흘러간 것들은 잡히지 않습니다. 깊이 새겨져 있는 것들만 잡을 수 있는 것이죠. 즉, 나는 간장게장을 흘려 봤던 것이고, 안도현 시인은 깊이 새겨본 겁니다.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 세운 게 살면서 처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계속 흘려 보다가 그때 한 번을 깊이 본 것이 아이디어가 된 것이죠. 이래서 볼 견(見)인 겁니다. 視而不見 聽而不聞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그 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 중 <대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행동은 시청을 하는 거죠. 간장게장을 먹을때 그저 흘려 보고 들은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도현은 간장게장을 견문을 한 거예요. 그 차이입니다. 흘려 보고 듣느냐, 깊이 보고 듣느냐의 차이. 결국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의 경쟁력이 되어준 단어는 ‘見‘이었습니다. - P110
존 러스킨이라는 영국의 시인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뭘 봤니?"라고 물었을 때 그저 "풀"이라고 대답하지 말고, 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고, 잎이 몇 개 있었는데 길이는 어느 정도였고, 햇살은 어떻게 받고 있었으며 앞과 뒤의 색깔은 어땠고, 줄기와 잎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등 자세하고 소상히 그림 그리듯 말하라는 것이었죠. 이것은 즉, 들여다보라는 겁니다. 앙드레 지드도 지상의 양식에서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재능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하고, 간장게장을 보고도 감동하는 겁니다. - P113
"여행을 생활처럼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라고요. 다행히 이 이야기에는 눈을 빛내고 궁금해했어요. 그래서 설명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게 더 멋져.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갔다가 다신 안 돌아온다고 생각해봐.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 P125
저도 개를 길러봐서 아주 잘 압니다. 오랫동안 데리고 있다가 묻어준, 이제는 딸아이가 그린 초상화 한 장으로 기억하는 개가 있는데요. 그 개를 키울 때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가방을 내려놓고, 안경과 모자를 벗고 침대에 눕는 거였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오면 그 개는 반갑다고 5분 동안은 제 얼굴을 핥고 나서야 짖기를 멈췄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때 보면 핥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 밥을 주면, 이 세상에서 밥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먹죠. 잠잘 때도 보면, ‘아, 아까 주인이 왔을 때 꼬리쳤던 게 좀 아쉬운데 어쩌지?‘ 그런 고민은 추호도 없어요. 그냥 잡니다. 공놀이 할 때는 그 공이 우주예요.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즐기면서 집중하죠. 밀란 쿤데라도 똑같은 걸 느꼈는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카레닌이라는 개를 이야기하면서 ‘개들은 원형의 시간을 살고 있다. 행복은 원형의 시간 속에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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