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시가 맞을 거야」슈호프가 말했다. 「이렇게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걸 보니 말이야」 「중천에 해가 걸려 있으면 말이야…………」하고 해군 중령이 끼어든다. 「열두시가 아니고 한시야」 「아니, 왜 그렇지?」 슈호프가 눈을 치켜뜨며 반박한다. 「모든 선조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어.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때가 정오라는 것을 말이야」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야!」중령이 말을 되받아친다. 「법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아니, 그 따위 법령을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소비에트 정부지!」 중령은 모래를 실으러 갔고, 슈호프 역시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하늘의 법칙마저도 그들의 법령에 따라야 한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 P80
「자네한테 내린 이십오 년의 형기를 자꾸 세려고 하지 마! 이십오 년을 살지 어떨지는 아무도 몰라. 확실한 건 내가 꼬박 팔 년을 살았다는 것뿐이야!」 발 밑만 보고 걸어다니란 말이지. 그러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어떻게 이곳을 나갈 것인지 하는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테니 말이야.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온 죄목은 반역죄이다.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또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슈호프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결정을 내렸다. 슈호프는 그저 단순하게 계산속으로 결정해 버렸다. 즉,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반면, 인정하면 얼마가 됐든지간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서명했던 것뿐이다. - P82
슈호프는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작업 현장을 여러곳 돌아다녀봤지만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원래 안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죄수들이 일부러 고장을 내는 것들도 있다. 언젠가 한번은 죄수들이 목재 컨베이어를 고장낸 적이 있었다. 체인에 말뚝을 박고 모두 그 위에 올라타서 기계를 망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쉬고 싶었던 것이다. 원목을 계속 대라는 바람에 잠시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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