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다른 난민들과 함께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솔레다드에게는 평생 가장 길게 느껴진다. 루카에게 엘 노르테에 거의 다왔다는 말을 들은 뒤로 지평선에서 엘 노르테의 냄새가, 맥너겟과 막 출시된 나이키 운동화 냄새가 나는 듯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는 엘 노르테가 보이는 듯하고 어서 가고 싶어서 온몸이 씰룩거린다. 솔레다드는 척추를, 눈을, 폐를 북쪽으로 내민다. 다른 사람들이 차갑고 단단한 땅에 앉아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자는 동안 솔레다드는 달빛 속에서 선로를 서성인다. 이렇게 엘 노르테에 가까이 오니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새로운 공포가 그들을 덮쳐이뤄지기 직전인 꿈을 훔쳐 갈까 무섭다. 솔레다드는 눈을 붙여보려고 한다. 골치가 지끈거리고 나서야 자신이 숨을 죽이고 있다는걸 깨닫는다. - P423
이번에는 리디아가 파올라의 처지에 공감해 몸이 마비된다. 리디아는 자신이 느끼는 깊은 슬픔에 깜짝 놀란다. 그녀에게 아직 다른 사람을 위해, 파올로의 살해된 조카를 위해 슬퍼할 감정이 남아있단 말인가? 그렇다. 지독한 공허감이 들 정도의 고통과 만난 적도 없는 소년을 향한 절망이 느껴진다. 납치된 모든 소년에게 느끼는 무수한 슬픔이 루카가 이어놓은 점들처럼 이 집에서 저 집으로이어진다. 그 고통은 너무 크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각각의잔인한 죽음이 스스로 100배, 1,000배 증폭된다. 이 은행에 있는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그런 슬픔을 알고 있다. 노갈레스에 사는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 개의 플라사로 나뉘어서 하비에르 같은사람들의 통치를 받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체 왜? - P465
리디아는 국경을 넘는 순간이 비장할줄 알았다. 한발짝만 내디디면 멕시코를 벗어나 미합중국에 들어가는 식으로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질 줄 알았다. 그 순간이 오면 잠깐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물리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자신이 남기고 가는 것, 그러니까 어디에나 존재하는 하비에르와 그의 심복들에 대한 두려움을돌아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을 줄 알았다. 18일 동안 2,600여 킬로미터를 견딘 끝에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전, 학살이 일어나기 전의 삶, 아카풀코에서의 행복한 유년기도 돌아보고 싶다. 여섯 살 생일이 있던 여름에 매일 입었던 오렌지색 수영복, 십대 때라 케브라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일. 아직 아무런 부끄럼 없이 아빠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 바라비에하 해변을 거닐던 일. 엄마의사랑스러운 수백 가지 불만. 대학, 세바스티안, 책방. 출산 후 처음으로 루카를 안았던 순간. 리디아는 작은 죽음을 맞이하듯 이런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순간이 있을 줄 알았다. 다른 세계로넘어가는 문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저 사막의 방울뱀처럼 고통의 허물을 벗고 그것을 멕시코 땅에 남겨둘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국경을 넘는 순간은 이미 지났고 리디아는 국경을 넘는 줄도 몰랐다. 돌아보지도 못했고 국경 너머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될 만한 어떤 간소한 의식도 치르지 못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그저 전진할 뿐이다. - P519
두 모자 혹은 루카는 여전히 불을 켜고 잔다. 리디아는 대개 잠을 자지 않고 루카 옆에 일어나 앉아 있다. 예전에 세바스티안이 잤던 자리에 이제는 루카가 자고 있다. 리디아는 한 손으로 루카의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가 또 아빠 꿈을 꾸기 바란다. 곧 세바스티안이 아들의 꿈에서 나와 자신의 꿈에도 찾아오길 바란다. 마치 세바스티안이 이 방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분자이자 원자라서 루카의 뇌에서 그녀의 뇌로, 루카의 귀에서 그녀의 귀로 이동할 수 있다는 듯이. 리디아는 그날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다. 램프의 부드러운 둥근 불빛이 끌어당겨 세운 그녀의 무릎에, 따뜻한 담요에, 루카가 내뱉는 숨에 떨어진다. 새로운 집에서 리디아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다시 읽는다. 처음에는 스페인어로, 그다음에는 영어로, 아무도 그 책을 빼앗아갈 수 없다. 그 책은 리디아만의 것이다. - P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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