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실에서 가치가 나올 수 없다‘라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동물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런 이해가 나를 자동적으로 채식주의자로 변하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겠다는 결정은 어떤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는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실이 100퍼센트 당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일단 바뀔 수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이나 가치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것은 우리의 일상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사실과 가치는 그 연결이 느슨하거나 팽팽한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마치 동맥과 정맥이 모세혈관을 통해 연결되어 있듯이 미세한 연결망들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사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듯이, 가치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도 않다. - P323
저항이 없는 그 공간은 갈릴레오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의 위대함은 그가 이러한 공간을 창조해냈다는 데 있다. ‘우리 주변엔 없지만 우주에 있을 수 있다. 지구가 태양을 계속 도는데 왜 계속 돌까?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엔 저항이 없기 때문에 계속 도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그래서 지구엔 없을지 몰라도 저항이 없는 공간이 우주엔 존재한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상화된 공간을 먼저 이해하고, 그곳에서 만족하는 법칙을 만들어내고, 일상에서는 그 법칙을 변형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식의 논증이 갈릴레오식의 논증이다. 정리해보자. 갈릴레오는 관성의 법칙이나 자유낙하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런 법칙은 자연에서 찾아질수 없다. 그는 마찰이 없는 평면, 저항이 없는 공간을 상상함으로써 이런 법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법칙이 만족되는 상황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갈릴레오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물리학은 자연에 있는 법칙을 그냥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규칙이나 법칙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창의적으로만든 결과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일이 예술가들이 하는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P333
과학 논문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옳은가를 검증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대중문화에 나타난 과학이 얼마나 옳은가, 그것만을 지적하는 것은 문화를 마치과학에 종속된 것인 양 생각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괴물이라는 새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같은작품은 과학적으로 틀렸고 따라서 가치가 없다고여기는 것은 실로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보다는 과학의 일부가 녹아든 대중문화가 대체 세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는지, 이것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통찰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일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때, 과학은 우리의 문화에 더 튼튼하게 뿌리내릴 것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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