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의 ‘크로스‘
어떤 개념들은 오래 지속되는데, 그중 하나가 ‘두 문화‘라는 것이다. 두 문화는 1959년에 영국의 작가이자 화학자였던 찰스 스노Charles Snow가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연에서 처음한 말이다. 그는 여기서 과학자들이 인문학에 대해 무지하고,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 P11
그런데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핵경쟁이 이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치킨게임을 할 때는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와서 부딪치기에, 실제 충돌이 일어나면 양쪽 모두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부딪힐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상대가 언젠가 핸들을 돌릴 것임을 알고 있고, 상대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필승의 방법이 있는가?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시동 걸고 출발 준비를 할 때 한쪽에서 핸들을 뽑아 보란 듯이 창밖으로 던진 후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면 핸들을 돌릴수 없는 상대를 보고 맞은편 차는 살기 위해 자신이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비슷한 상황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묘사된다. 영화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핵전쟁을 억제하는 전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전쟁억제력이란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예술이다." 핵전쟁 전략이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것 같지만 결국 그 본질은 치킨게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 P45
불과 몇 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문자도 없이, 특별한 재능 없이 자기 몸 하나를 걱정하던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던 인간이 이제는 급기야 자그마한 플루토늄 폭탄 하나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기술을 소유하게 되었다. 실로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문명 발달과 달리 인간이 가진 야만성은 조금도 순화되거나 성숙해지지 못해서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사람을 고문하면서도 재미를 느끼는 존재이다. 인간의 지혜는 기술 발전에 걸맞게 발전하지 못했으니, 이는 마치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머리는 어린아이 같은 형상이라고나 할까. 고문을 즐기면서도 카메라를 잘 만드는 사람들, 덩치는 산만큼 커졌지만 마음은 아직도 유치한 사람들, 발전한 기술문명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 결국 이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이 영화의 주제인 것이다. - P51
우리는 마리 퀴리에 대한 최근의 역사적 연구들을 통해 에브 퀴리가 묘사한 『퀴리 부인』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않은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조금 더 일반화하자면, 위인의 전기를 읽는 데는 여러 가지 독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읽는 이 전기의 원형原型을 만든 작가는 누구인가? 왜 그 작가는 위인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는가? 왜 이런 내러티브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이런 이야기에서 왜곡되거나 과장된 부분은 없는가? 여기에서 사실과 달리 작가에 의해 삽입된 부분, 아니면 빠진 부분은 없는가? 그런 부분들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전기를 읽는 작업은 인문학적인 해석의 힘을 이용해서 중층적으로 전기를 읽는 독법이다. - P81
사실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은 이분이 아니라 삼분된다. 세상에는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고, 인간 아래 존재가있게 된다. 서양에서는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를 천사, 신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동양에서는 신선, 부처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그리고 인간 아래에는 동물들, 미물들이 존재했는데, 인간 중에서도 특정한 부류의 인간들은 보통 인간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들이라고 간주되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동물보다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을 뿐이었다. 20세기 중엽 이전의 수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노예가해방된 뒤에도 흑인에 대한 편견은 널리 퍼져 있었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가 보편적이었고,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에 대한 혐오도 일반적이었다. 과학은 인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과학은 인간을 분류해서 이해하지만, 동시에 이런 분류는 차별을 낳기도 한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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