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집에 20년 넘게 살면서 집 구조를 많이 바꿨어. 수리도 여러 번 하고, 옥상 올라가는 계단도 부엌이 아니라 거실에 있었지. 내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전에 비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는 거야. 아궁이를 없애고 기름보일러를 들여놓고, 쥐도 안 나오고, 우리나라가 워낙 빨리 발전하잖니. 그러니까..." 엄마는 거기서 말을 흐렸고, 나도 뭐라고 더 말을 하지 않았어. - P100
한참을 웃고 나서 문득 ‘옛날에도 우리집에 이렇게 개미가 많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분명히 한때 우리 집에서는 쥐가 나왔어. 그런데 쥐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해서 집의 위생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야. 쥐가 사라지자 바퀴벌레가 들끓었고, 바퀴벌레 다음에는 개미가 나오고, 그랬던 거야. 뭐가 바뀌긴 했는데 나아진 건 아니었어. - P102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알아?" "어느 게 더 위험한데?"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 P124
"만약 남극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파블로를 잡아다 헬리콥터에 태워서 하와이에 내려다 줬다면..……… 파블로는 그래도 행복했을까?" 내가 물었어. "어쨌든 하와이에 갔잖아." 지명이 고집했지.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 P160
공항을 나오니까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바람이불어. 햇빛이 짱짱해서 난 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면서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나 자신에게. "해브어 나이스데이." 그리고 속으로 결심의 말을 덧붙였어.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 라고.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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